이런 기분도
존중해줄 거다
들리지 않던 파도와 그치지 않던 비를 지나, 멈춘 날에 「준비할 시간」이라는 이름을 붙여 준 한 주.
새벽의 흐름
새벽 미사 전, 차 안에서 선릿모닝을 연 아침이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쓰고 싶어 바닷가로 나왔지만, 들려온 건 차 안의 에어컨과 뉴스 소리였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쓰려던 아침은 「글렀군」 하는 너스레로 넘어갔고, 글은 곧 돈 이야기로 기울었다. 배우고 싶은 자리는 늘어 가는데 그만큼의 몫을 아직 벌지 못한다는 조급함, 준비해 온 자리를 알리는 일이 생각만큼 닿지 않는 막막함. 그래도 광고를 시작했고, 좋은 인연들을 만나 작가 동지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고 적었다. 글은 야훼 이레의 기도로 닫혔다 — “주님, 제게 없는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채워 주소서.”
밤새 비가 그치지 않은 새벽이다. 빗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오고, 공기는 한 꺼풀 벗겨진 듯 가볍고 차가웠다. 그 소리와 공기를 적고 싶었는데, 졸음 속에서 문장은 엉뚱한 데로 자꾸 흘러갔다. 글은 스스로 알아챘다 — “아 또 헛소리. 잠을 자지 못하니 글을 쓰며 잠을 자나 보다.” 그리고 몽롱쓰기에서 건져 올린 것을 읽히는 글로 다져 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적었다. 건강을 챙기자는 말을 남기고, 글은 일찍 닫혔다.
하루를 거의 잠으로 보낸 다음 날의 새벽이다. 글은 왜 이렇게 잠에 빠진 하루를 보냈을까 물었고, 나를 보여 줄 것이 아직 적다는 생각을 그 아래에서 찾아냈다. 그러다 물음의 방향이 바뀌어, 남은 시간에 편집 공부를 더 하자고, 국어 공부는 늘 재밌었으니 다행이라고 적었다. 사 두고 읽지 못한 편집 책들도 하나하나 읽기로 했다. 나는 이 시간을 주님이 주신 준비할 시간이라 불렀다. 빗물이 먼지를 쓸어 가듯 걱정도 쓸려 가길 바라며, 글은 나에게 외쳤다 — “힘내 다현아!!!”
한파가 남쪽까지 내려온 새벽이다. 창문을 열어 두고 잔 거실은 정말로 추웠다. 글은 하느님께 물었다. 지금 이 시기를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기로 보아도 되느냐고. 그리고 11월과 12월엔 편집자 공부에 마음을 다 쏟기로 했다 — 나부터 막힘 없이 강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이 글에는 마음이 크게 흔들린 저녁을 오래 들여다본 대목도 있다. 여기 옮기지 않는다. 그래도 아침의 나는 아이에게 따뜻하게 입으라고 해야지 하고 적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루를 이불 속에서 보낸 다음 날의 새벽이다. 마음이 무거운 며칠이었다. 지금은 감정이 넘치는 때이니 비워 내고 쉬자고 적었다 — “이런 기분도 존중해줄 거다.” 그리고 글은 반대쪽 발도 내디뎠다. 기분은 별로여도 해야 할 일은 있으니, 자꾸 빠질 생각 말고 움직일 생각을 하자고. 기도는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힘을 달라는 말로 닫혔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파도 소리를 듣고자 했지만, 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저 바깥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와 서늘해진 공기를 적고 싶었는데.
비와 함께 나의 걱정도 씻겨 내려가면 좋겠다.
편집 능력과 스스로 책을 낼 수 있는 경험은 한 번 해두면 자기 것이 된다.
새벽 공기가 마치 겨울의 온도를 머금고 나를 감쌌다.
이런 기분도 존중해줄 거다.
이번 주 결
이번 주의 글에는 「힘」이 오르내렸다. 월요일엔 책 읽을 힘도 나지 않았고, 화요일의 제목은 「나를 충전해줘」였다. 수요일엔 다시금 희망할 수 있는 힘을 부어 주셨다고 감사하며 나에게 힘내라고 외쳤고, 목요일과 금요일의 글은 힘을 달라는 기도로 닫혔다. 그 힘을 어디서 길어 오는지도 글은 숨기지 않았다. 창밖의 빗소리, 늘 재밌던 국어 공부, 그리고 기도. 힘은 한 번에 차오르지 않았다. 빠진 날마다 다시 힘을 내자는 문장이 뒤따랐고, 그 되풀이가 이번 주의 걸음이었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멈춘 날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잠에 기운 하루를 두고 수요일의 나는 「준비할 시간」이라 했고, 목요일엔 지금을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기로 보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금요일엔 이런 기분도 존중하겠다고 적었다. 실패라고 부를 수도 있었던 자리에 준비라는 이름이 놓인 셈이다. 그런 마음을 존중하자는 생각은 9월에도, 내 기분을 인정하자는 다짐은 지난주에도 적혔다. 다시 적힌 다짐이다. 그렇게 11월과 12월은 쉬어 가는 달이면서 정비하는 달이 되었다.
그 사이 계절도 건너갔다. 화요일엔 밤새 내린 비에 공기가 한 꺼풀 벗겨진 듯 가볍고 차가워졌고, 수요일엔 빗물이 먼지를 쓸어 가듯 걱정도 쓸려 가길 바랐다. 목요일엔 한파가 남쪽까지 내려왔다. 마음은 오르내렸지만 날씨는 한 방향으로 걸었다 — 씻기고, 비워지고, 서늘해지는 쪽으로. 금요일의 나는 그 끝에서 「비워 내고 쉬자」고 적었다. 비워 낸 다음에야 새로 채울 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이 주의 날씨가 먼저 보여 준 셈이다.
이번 주의 씨앗
멈춘 날에 다른 이름을 붙여 줄 때,
빠진 힘은 돌아올 자리를 얻는다.
이렛날 —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엿새 동안 하시던 일을 마치고 이렛날에 쉬시며, 그날에 복을 내리셨다. 쉼이 일을 못 한 날이 아니라 복을 받은 날일 수 있다면, 11월과 12월에 나는 어떤 이름을 붙여 줄까.
한 번과 되풀이 — 같은 수요일에 두 문장이 나란히 놓였다. 편집 능력과 책을 내는 경험은 한 번 해 두면 자기 것이 된다는 믿음, 그리고 한 번 했다고 완전한 내 것이 되지는 않는 공부를 더 해 보자는 다짐. 매일 새벽 쓰는 일은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막힘 없이 — 목요일의 나는 나부터 막힘 없이 강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적었다. 막힘 없이 말하게 되는 날은, 매일 새벽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가는 30분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이런 기분도 존중해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