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새벽

2026.10.12 — 10.18 · 한 주의 새벽

나를 우선시하는
삶을 지켜야지

혼자가 여러 얼굴로 다녀간 한 주. 나만의 속도로 시작한 운동, 나만의 방을 찾아 나선 길, 혼자라는 외로움 사이에서 원인을 나에게서만 찾지 않는 법을 더듬었다.

10 · 12 월 10 · 13 화 10 · 14 수 10 · 15 목 10 · 16 금
월~금 다섯 날에 모닝페이지 다섯 편
주말은 글이 없다.
01

새벽의 흐름

10월 12일 — 월요일 · 기억이 아니라 어휘

꿈을 붙잡으려 눈 뜨자마자 쓴 새벽이다. 꿈속의 나는 어떤 규칙에 묶여, 하네스가 채워진 말처럼 그 규칙에 맞는 해석만 할 수 있었다. 늘 꿈을 꾸면서도 놓친다는 아쉬움 끝에 글은 이렇게 짚었다 — “어쩌면 내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한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연휴의 한글날, 집에 혼자 남은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밤톨이를 챙겨 나섰다. 두 시간 넘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 처음 맛본 댕푸치노를 단숨에 비우는 걸 보며 괜히 뿌듯했다. 그날 저녁 반가운 소식 하나가 닿았고, 글은 감사의 기도로 닫혔다.

10월 13일 — 화요일 · 나만의 속도

글은 물음으로 열렸다. 이미 해 보았고 방법도 아는데, 그 쉬운 걸 왜 하지 못할까. 너무 잘 알아서 미루는 것이라고, 결국 게을러서가 아니냐고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몸을 돌보던 까닭이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 아이를 낳은 뒤 달라진 몸의 불편함으로 옮겨 온 긴 시간도 되짚었다. 광고 속 앱을 결제하는 대신 고른 길은 운동노트 앱을 만들어 보는 쪽이었다. 4주 플랜과 하루 체크리스트를 띄워 두니 왜 진작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전날 잠깐 움직여 보고 다 따라 하지 못했지만, 글은 속도를 낮췄다 — “욕심부리지 말고 꾸준히, 조금씩 꾸준히의 힘을 믿어 보자.”

10월 14일 — 수요일 · 나를 먼저 지키는 마음

글은 “정말 끝난 거겠지?” 하는 얼떨떨한 물음으로 열렸다. 오래 마음을 써 온 일들 곁에서, 나는 이번에는 나를 먼저 지키기로 했다. 그리고 다짐을 적었다 — “좀 더 나를 사랑하고, 내 기분을 인정하고, 나를 우선시하는 삶을 지켜야지.” 갑자기 꽂힌 작업실 생각과 곧 문을 열 살롱 앞의 막막함은 야훼 이레로 건너갔다. 내게 없는 것은 주님께 모두 있다고, 두려움 없이 해야 할 일을 준비하게 해 달라고.

10월 15일 — 목요일 · 나만의 방

남편과 공유 오피스를 보러 다녀온 다음 날의 새벽이다. 집에 있으면 자꾸 침대에 눕게 되어, 일상과 떨어져 출퇴근할 수 있는 나만의 자리를 꿈꿨다. 세 곳을 돌며 글은 오가는 길과 관리 상태, 사람의 기척과 비용을 하나씩 저울에 올렸다. 그러다 저울은 공간에서 나로 기울었다. 이 값을 감당할 능력이 내게 있는가, 사무실이 생긴다고 일이 달라질까.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겠다는, 자신감이 떨어진 아침이었다. 그래도 남편이 찾아낸 세 번째 자리에 마음을 두고 맺었다 — “그래봐야 그림의 떡이지만 아무튼 지금 상황으로는 세 번째가 가장 마음에 든다.”

10월 16일 — 금요일 · 혼자 서고 싶은 마음, 혼자라는 외로움

혼자라는 외로움이 제목이 된 새벽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오래 품어 온 바람을 꺼내 놓았다가 그 마음이 닿지 않았다고 느낀 날이었다. 나는 또 원인을 나에게서 찾았고 그만큼 괴로워졌다. 그 사이 마음이 가장 어두운 곳까지 내려간 대목이 있다. 여기 옮기지 않는다. 글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돌아왔다.

02

새벽이 남긴 문장들

어쩌면 내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한 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10월 12일

처음 먹는 건데 단숨에 다 마시는 걸 보니 괜시리 내 마음이 뿌듯했다.

10월 12일

욕심부리지 말고 꾸준히, 조금씩 꾸준히의 힘을 믿어 보자.

10월 13일

좀 더 나를 사랑하고, 내 기분을 인정하고, 나를 우선시하는 삶을 지켜야지.

10월 14일

나만의 사무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10월 15일

난 혼자 살 생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10월 16일
03

이번 주 결

이번 주의 글에는 「혼자」가 다섯 날 모두 다녀갔다. 가족이 저마다 자리를 비운 휴일, 혼자 남은 집에서 밤톨이를 챙겨 나선 혼자. 남의 앱 대신 나만의 속도를 고른 혼자. 나를 먼저 지키기로 다짐한 혼자. 일상과 떨어진 나만의 방을 그려 본 혼자. 그리고 혼자서도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과,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다는 외로움. 혼자는 이번 주에 두 얼굴이었다. 서고 싶은 혼자와 남겨진 혼자.

또 하나 되풀이된 것은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버릇이었다. 화요일엔 게을러서가 아닐까, 목요일엔 기획이 별로였던 걸까, 금요일엔 또 원인을 내게서 찾았다. 그 곁에 두 번의 당부가 놓였다. 수요일에 붙든 「나를 우선시하는 삶」, 그리고 금요일에 떠올린 내 탓을 하지 말라는 당부. 그 말 앞에서 나는 내 탓이 가장 쉽다고 답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탓하고 싶지 않아서. 내 탓을 하는 마음이 실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키려던 마음이었다는 것이 이번 주 글 밑바닥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혼자라는 말 곁에는 늘 누군가가 있었다. 두 시간 넘게 지켜본 밤톨이, 세 곳을 함께 돌고 세 번째 자리를 찾아낸 남편, 늘 곁에서 흔들리지 않게 붙들어 주신다는 기도. 금요일의 글은 이렇게도 적었다 — 혼자 살 생각은 없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고. 혼자 서고 싶은 마음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은 서로 밀어내는 말이 아니었다.

04

이번 주의 씨앗

SEED

원인을 나에게서만 찾지 않을 때,
혼자는 외로움이 아니라 나만의 자리가 된다.

기억이 아니라 어휘 — 꿈을 놓치는 까닭이 기억이 아니라 어휘라면, 매일 새벽 쓰는 일은 무의식이 보낸 편지를 읽을 말을 하나씩 모으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네스를 채운 그 꿈속 규칙에 이름을 붙인다면, 나는 어떤 말을 고를까.

돈과 자기만의 방 — 같은 주에 나만의 작업실과 혼자 설 수 있는 몫이 나란히 놓였다. 백 년 가까이 전, 한 작가는 글 쓰는 여자에게 필요한 것으로 돈과 자기만의 방을 꼽았다. 지금 내가 찾는 방은 공간일까, 나에게 건네는 허락일까.

탓하지 않는 자리 — 내 탓이 가장 쉬웠던 건 좋아하는 사람들을 탓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마음을 그대로 둔 채 나도 함께 지킬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건 어떤 문장일까.

좀 더 나를 사랑하고, 내 기분을 인정하고, 나를 우선시하는 삶을 지켜야지.

← 지난 새벽 모두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