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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8 — 10.04 · 한 주의 새벽

덮개를 벗기고,
끝까지

끝맺지 못한다고 나를 탓하던 한 주. 원고를 끝까지 읽어 내려 애쓰는 사이, 나를 지키려 씌운 덮개 아래에서 손끝의 감각과 곁에 있는 것들의 힘이 돌아왔다.

9 · 28 월 9 · 29 화 9 · 30 수 10 · 1 목 10 · 2 금
연휴 뒤 다시 시작한 한 주, 다섯 날에 모닝페이지 다섯 편
주말 이틀은 글이 없다.
01

새벽의 흐름

9월 28일 — 월요일 · 빨리 흐른 시간의 증거

연휴 뒤 첫 새벽은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흐르는지 묻는 데서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달이 가 있다고 자책하던 글은, 그렇게 빨리 흘렀다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매주 쌓이는 인사이트 기록이 그 증거가 되어 주었다. 나태하다고 느낀 까닭은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끝맺지 못해서라는 데까지 글이 닿았다. 끝은 외워 갈 짧은 시, 그리고 떠난 반려견 토르의 마지막 눈빛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9월 29일 — 화요일 · 이번엔 끝까지 읽기

‘미루지 말자’로 연 날이다. 읽다 자꾸 멈추던 버릇을 두고, 걸리는 곳엔 형광펜만 긋고 끝까지 넘어가 보기로 했다. 다이어리의 화려한 첫 장이 오히려 쓰는 손을 붙잡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쓰기 위해 만든 것엔 쓰임이 먼저다. 글은 오래 묻어 둔 기억이 건드려진 자리까지 내려갔다.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그 무게를 내려놓은 뒤 온전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곁에서 다시 중심을 잡았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 기도로 맺었다.

9월 30일 — 수요일 · 걸리는 문장 앞에서

전자책 원고는 쉽게 읽히지 않았다. 남의 원고는 술술 넘어가는데 내 원고는 토씨 하나에도 턱턱 걸렸다. 실용서는 전하려는 바를 간단명료하게 짚어야 하는데 아직 아쉬워서, 그래서 자꾸 멈춰 선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도 지난 책보다 꼭지가 풍부하고 더 책다워졌다. 마감 앞에서 조급해지던 마음은 ‘야훼 이레’라는 기도에서 풀렸다. 이어서 갓 지은 밥을 후후 불어 강아지 밤톨이에게 건네는 아침이 왔다. 짭짭 씹어 먹는 모습에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고, 글은 행복하게 맺었다.

10월 1일 — 목요일 · 덮개를 벗기다

집을 떠나 머문 자리에서 맞은 새벽이다. 지난번엔 주황과 분홍으로 물들던 창이 이번엔 아직 남색이었다. 조용히 쓰려고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가, 손끝을 둔하게 막던 키보드 덮개를 벗겨 냈다. 단단한 걸림과 매끄러운 감촉이 손에 돌아왔다. 날이 밝으며 창밖 잔디가 제 색을 찾자 전날 밟은 폭신한 감각이 떠올랐다. 마음이 깊이 가라앉았던 때엔 느끼지 못하던 것들이다. 무거워진 몸을 탓하는 대신 “나를 좀 사랑해 주자”고 적었고, 나이 들어 가는 엄마의 눈동자를 오래 생각했다.

10월 2일 — 금요일 · 손은 저절로, 마음은 곁으로

전자책 등록을 꼭 마쳐야 하는 날의 새벽이었다. 졸음 속에서도 손은 저절로 움직였고, 글 사이로 생뚱맞은 문장이 툭툭 끼어들었다. 몽롱쓰기가 이제 몸에 밴 걸까 물었다. 마지막 분기를 맞아, 사 두기만 한 책들을 다음 주 새로 시작하는 독서 모임에 맞춰 이번엔 끝까지 읽겠다고 다짐했다. 예측할 수 없는 하루 앞에서 불안해지는 나를, 화면 속에서 여느 때와 똑같이 글을 쓰고 계신 분의 모습이 붙들어 준다는 것도 알아챘다. 그것이 선릿모닝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02

새벽이 남긴 문장들

나는 뭔가 집중해서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9월 28일

목표한 바를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나태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9월 28일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가 실용성이라는 걸 잊는다.

9월 29일

흡족하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고나 할까?

9월 30일

키보드를 보호하는 목적의 덮개가 이 재미있는 손끝의 감각을 많이 앗아가는구나 싶다.

10월 1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를 좀 사랑해 주자.

10월 1일
03

이번 주 결

이번 주의 글은 ‘끝까지’를 붙들고 있었다. 월요일에 나태의 정체를 ‘끝맺지 못함’으로 다시 이름 붙이자, 화요일엔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는 법을 정했고, 수요일엔 걸리는 문장을 붙들고 원고를 읽어 나갔고, 금요일엔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시작만 좋아한다고 나를 탓하던 글이, 한 주 내내 끝을 향해 조금씩 걸어간 셈이다.

또 하나 되풀이된 것은 덮개였다. 다이어리의 화려한 장식, 노트북의 키보드 덮개, 그리고 나를 다그치던 엄격함까지, 지키려고 씌운 것이 도리어 손끝을 둔하게 만들고 있었다. 벗겨 내자 감각이 돌아왔다. 창밖 잔디의 촉감, 밥을 받아먹는 강아지의 눈빛, 엄마의 회색빛 눈동자 같은 것들이다.

그 사이로 몸이 계속 말을 걸었다. ‘배가 고프구나’로 연 아침이 있었고, 잠이 모자란 새벽이 이어졌다. 허기와 졸음 속에서도 글은 무언가로 채워지는 쪽으로 기울었다. 쌓여 가는 기록,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화면 속 익숙한 모습이 그 자리를 채웠다.

04

이번 주의 씨앗

SEED

덮개 아래의
손끝

끝맺음의 기준 — 나태는 ‘하지 않음’이 아니라 ‘끝맺지 못함’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끝으로 볼 것인가. 형광펜만 긋고 끝까지 넘어가는 통독처럼, 끝은 완벽이 아니라 한 번 다 지나가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덮개와 손끝 — 지키려고 씌운 것이 감각을 앗아갈 때가 있다. 아름다움이 쓰임을 가리는 다이어리, 손을 막는 키보드 덮개, 나를 다그치는 엄격함. 무엇을 벗겨 내야 다시 손끝에 닿을까.

나를 기억해 주는 곁 — 매주 쌓이는 기록, 온전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늘 같은 자리에서 함께 쓰는 사람. 내가 나를 잊을 때 대신 기억해 주는 것들이 이번 주를 붙들었다. 함께 쓰는 새벽이 서로에게 그런 곁이 될 수 있을까.

덮개를 벗기고, 끝까지 읽어 낸다.

햇살(이다현) · 포근나루
『파도는 여전히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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