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아프고,
다시 앉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놓치며 살았던 것들이 떠올랐다. 몸이 아프고, 글이 깨지고, 그래도 다시 원고 앞에 앉았다.
새벽의 흐름
한 주의 첫 글은 ‘잊었다’는 말로 가득했다. 챙기지 못한 것들이 하나씩 떠오르는데, 그 아래에는 마음의 여유 없음과 금전적 부담이 겹겹이 깔려 있었다. 글은 거기서 한때 매우 힘들었던 시기까지 내려갔다.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없던 일로 두지도 않는다. 지금은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돌아왔다는 것,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글이 스스로 확인하고 있었다 — “다현이 파이팅!!”
화요일은 몸이 먼저 말을 걸었다. 전날 밤부터 속이 좋지 않아 잠을 설쳤고, 그 사이 유난히 선명한 꿈을 꾸었다. 몸이 가라앉은 날에 꿈은 더 짙어진다는 감각을 글이 담고 있었다. 그런데도 글은 곧 앞으로 나아갔다. 새로 열어볼 클래스를 구상하고, 아이와 함께 멈춰 있는 프로젝트를 다시 움직이고 싶다고 적었다 — “오늘도 할 일이 있음에 감사.”
수요일 글은 거의 깨어나지 못한 채 쓰였다. 문장이 중간에 끊기고, 글자가 흩어지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 전자책과 강의에 대한 구상이 몇 조각 비치다가 곧 잠에 잠겼다. 몽롱쓰기라는 이름이 가장 정직하게 드러난 날이었다. ‘다시 쓰자’라는 외침으로 글이 끝났지만, 그 외침 자체가 졸음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흘간 쉬고 일요일에 다시 글 앞에 앉았다. 연휴 전 몸이 많이 아팠지만 쉬고 나니 나아졌다. 카페에서 원고를 펼쳤는데, 내가 구상하지 않은 것이 반 이상이었다. AI와 함께 만드는 과정은 즐겁지만, 그 결과물이 온전히 내 것인가라는 물음이 글 전체를 관통했다. 가상의 사례를 걷어내고 직접 해 본 경험으로 채우기로 했다. 오래 집중한 끝에 글은 이 문장에 닿았다 — “부족해도 난 내 글이 좋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하루가 다르게 기분은 달라지고 마음 상태도 다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늘 몽롱쓰기는 제대로 몽롱쓰기가 될 것 같다.
부족해도 난 내 글이 좋다.
이번 주 결
이번 주의 글들은 놓치고 잊고 무너지는 자리에서 시작했다. 월요일의 자책, 화요일의 아픈 몸, 수요일의 깨지는 의식. 그런데 일요일에 원고 앞에 다시 앉았을 때, 글은 ‘부족한 나’를 긍정하는 데까지 왔다. 잃어버리는 것과 되찾는 것이 같은 한 주 안에 있었다.
이번 주의 씨앗
잃어버리는 것과
되찾는 것
‘내 것’의 기준 — AI와 협업하며 즐겁게 만드는 것과 온전히 내 글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사이의 경계. 일요일 글이 이 물음을 정면으로 꺼냈다.
몸이 말할 때 — 몸이 멈추라고 말하는 날에도 글은 쓰였다. 수요일의 깨진 문장이 보여주듯, 그 자리의 글은 다른 결을 갖는다.
놓치면서 붙드는 것 — 잊고 놓치고 흘리면서도 끝내 손을 놓지 않는 자리가 있었다. 아이, 원고, 새벽의 글.
잊고, 아프고, 다시 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