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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4 — 09.20 · 한 주의 새벽

흔들리는 주에도,
새벽 앞에 앉는 손은
나를 잃지 않았다

밖으로 나갔다가 안으로 돌아온 한 주 — 낯선 자리에서 확인한 다정, 안에서 마주한 서툰 얼굴, 흔들림 사이 흔들리지 않은 새벽 책상.

9 · 14 월 9 · 15 화 9 · 16 수 9 · 17 목 9 · 18 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섯 날, 모닝페이지 다섯 편
주말에는 새벽 글이 없다. 쉼도 그 주의 일부다.
01

새벽의 흐름

9월 14일 — 월요일 · 반가운 얼굴들 사이에서

먼 길 위에서 맞이한 새벽이었다. 함께 배우는 사람들 사이에 놓이는 것이 뿌듯했고, 마중 나온 얼굴들이 반가웠다. 자비로 오는 길이었지만 나를 갈고 닦는 시간이라 여기며 기꺼이 걸음을 옮겼다.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걷는 시간이 앞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창밖 여명 앞에서 조용히 얹혔다 — “내게 주어진 오전 시간을 감사히 받아들여야지.”

9월 15일 — 화요일 · 몸과 관계의 회복

오랜만의 심장 내과 진료 앞에서, 약을 잘 챙기지 못한 흔적이 그대로 몸에 남아 있었다. 먼 길을 다녀오며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 뒤로 온몸이 아파왔지만, 그것보다 마음에 남은 건 함께 다녀온 사람들과 부쩍 가까워진 감각이었다. 눈빛을 오래 마주치고, 다정을 읽고, 그 다정이 잘 전해졌기를 바라는 마음. 요즘은 AI 도구도 용도별로 나누어 쓰게 되었다 — 코드는 이곳, 꿈 해석은 저곳, 잔잔한 것은 또 다른 곳. 잠이 부족한 아침, 다시 침대에 눕기로 했다. 회복이 필요했다.

9월 16일 — 수요일 · 여기 옮기지 않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가장 서툰 얼굴을 보이고 만 새벽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없던 일로 두지도 않는다. 그날 새벽의 글은 대부분이 후회와 기도였고, 잠 부족과 무의식이 뒤엉킨 문장들이었다. 성당의 긴 계단을 신부님 뒤에서 오르는 꿈이 문장 사이로 떠올랐다가 다시 침잠했다.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 만든 이미지였을 것이다. 새벽마다 이 자리에 앉는 것은 그래서 내게 큰 일이다 —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시간에 글을 쓰는 게 내게는 의미가 큰 일이다.”

9월 17일 — 목요일 · 함께 접속하는 사람들

5시 24분, 누군가 먼저 새벽 자리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도 손도 보이지 않지만 함께 접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는 아침이 있다. 지인의 어머니께서 오랜 투병 끝에 영면에 드셨다는 소식을 며칠 전 받았고, 간병의 삶이 얼마나 오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를 생각했다 — “누구나 삶을 지나고 있다. 그 삶이 고통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으로 지나가길 소망한다.” 몽롱쓰기 중 잠깐씩 의식이 미끄러지는 감각이 요 며칠 늘었다. 잠이 부족할수록 손은 계속 움직이는데 문장은 무의식이 이어 쓰고 있었다.

9월 18일 — 금요일 · 살롱을 어떻게 열까

내 이름으로 여는 작은 자리를 어떻게 꾸릴지, 그것에 값을 어떻게 매길지 아침 내내 굴렸다. 인사이트 공유회는 무료로 계속 여는 게 결에 맞는지, 값이 붙어야 지속되는지 오래 저울질했다. 나루의 밤도 문을 여는 법을 다듬을 자리라는 생각이 오래 머물렀다. 돈이 얽히면 자꾸 내가 하려는 일에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함께 접속해 새벽 글을 쓰는 이들이 대견해서, 그들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았다 — “이렇게 시간을 내어 자기만의 글쓰기 시간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02

새벽이 남긴 문장들

내게 주어진 오전 시간을 감사히 받아들여야지.

9월 14일

이렇게 이른 새벽,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시간에 글을 쓰는 게 내게는 의미가 큰 일이다.

9월 16일

누구나 삶을 지나고 있다. 그 삶이 고통이 아닌 기쁨과 즐거움으로 지나가길 소망한다.

9월 17일

이렇게 시간을 내어 자기만의 글쓰기 시간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9월 18일
03

이번 주 결

안에서는 나 자신에게 크게 실망한 새벽이 있었고, 밖에서는 다정을 확인한 자리들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가 가장 낯설어지는 새벽. 이 흔들림들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은 자리가 하나 있었다면 새벽 다섯 시 반의 책상뿐이었다. 몽롱쓰기가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자리라는 걸 이번 주만큼 몸으로 실감한 적이 없다.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고, 그 손이 나를 잃지 않게 붙들고 있었다.

04

이번 주의 씨앗

SEED

손이 나를 잃지 않게
붙들고 있었다

몽롱쓰기 중 미끄러지는 감각 — 잠·약·글쓰기 자세를 함께 살필 것. 걱정으로만 두지 않고 다음 진료에 정리해 가져가기.

작은 살롱의 값 — 인사이트 공유의 자리를 무료로 열지, 값을 붙여 지속 가능하게 할지. 답보다 저울을 오래 들고 있기.

다정이 잘 전해졌기를 — 눈빛을 오래 마주치고 나서 남은 마음. 관계에서 서두르지 않기.

흔들리는 주에도, 새벽 앞에 앉는 손은 나를 잃지 않았다.

햇살(이다현) · 포근나루
『파도는 여전히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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