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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7 — 09.13 · 한 주의 새벽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꿈도 기준도 흐릿한 한 주. 남이 세운 기준 앞에서 내 기준을 찾았다.

9 · 8 화 9 · 9 수 9 · 10 목 9 · 11 금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네 날, 모닝페이지 네 편
9월 7일과 주말에는 새벽 글이 없다. 쉼도 그 주의 일부다.
01

새벽의 흐름

9월 8일 — 화요일 · 엄청 길었던 하루

이날 글이 가장 오래 붙든 것은 시간의 부피였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와 한자리에서 봉헌하고, 거친 바다를 지나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오기까지 — 시계는 고작 세 시간을 지났을 뿐이었다. 몸이 먼저 지치는 걸 알면서도 정신을 붙잡아야 했던 아침. 그러다 글은 갑자기 방향을 튼다. 옳은 선택이란 무엇이고,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가. 새로 시작한 자리에서 내가 제안한 것이 그대로 실현되는 걸 보면서도 과정이 깊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적었다. 기준을 세우는 일과 그 기준이 늘 참인지 묻는 일이 한 아침에 나란히 있었다.

9월 9일 — 수요일 · 흐릿한 꿈의 흔적

꿈을 붙잡으려다 놓친 아침이다. 평소 상징으로 가득하던 꿈이 이날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아, 손을 멈추지 않고 더듬다 결국 포기했다. 피곤할수록 선명해지는 꿈이라는 관찰이 이날의 발견이다. 글은 거기서 새벽 자리로 옮겨간다 — 어떻게 하면 이 자리를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함께한다는 연대의 힘을 어떻게 더 크게 전할 수 있을까. 마지막은 공부 이야기였다. 도구에 기대 쉽게 가던 길이 막히자 아쉬움이 컸지만, 노력한 만큼 내 것이 된다는 자리로 돌아왔다.

9월 10일 — 목요일 · AI에 대한 고찰

한 사람이 건넨 한 문장이 종일 걸린 날이다. 마음에 턱 걸린 말을 몇 번이고 꺼내 되짚으면서, 그 말이 아픈 건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큰 탓이라는 데까지 갔다. 글은 거기서 더 멀리 간다. 나는 지금 무엇의 양분이 되고 있는가. 쉽게 타올랐다 쉽게 꺼지던 나의 전적을 스스로 꺼내 놓고,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윤리의식은 있으나 그 반대로 행동한다면 나는 올바로 살고 있는가 — 답을 내지 못한 채 마음이 무거워졌다.

9월 11일 — 금요일 · 출장 준비

떠나기 전날의 목록으로 여는 글. 옷과 노트북과 세면용품을 꼽다가, 하루쯤 쉬고 싶다는 마음을 적고는 그 마음을 존중하기로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피곤해지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방전된다는 문장이 이날의 중심이다. 몸은 늘 정직하니 가라앉기 전에 조절해야 한다고 적었고, 그대로 몸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묻는 자리로 갔다. 이십대와 견주지 말고 지금의 나를 바르게 판단하자고. 그러고는 다시 목록으로 돌아와, 오늘은 꼭 짐을 싸 두자고 적는다.

02

새벽이 남긴 문장들

거친 날씨가 남긴 바다는 바람보다 더 거칠게 자신을 보여 준다.

9월 8일

옳은 선택이란 뭘까?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거지?

9월 8일

내가 노력한 만큼 내 것이 되는 법인데.

9월 9일

윤리의식은 있으나 그 반대로 행동한다면 나는 올바로 살고 있는 걸까?

9월 10일

내 몸은 늘 정직해서 가라앉기 전에 조절을 잘 해야겠다.

9월 11일
03

이번 주 결

네 편이 저마다 다른 데서 시작했는데 끝은 한자리였다. 옳음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가, 나는 그 기준 앞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꿈은 흐릿했고 말은 마음에 걸렸고 몸은 신호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나는 밖의 판단을 그대로 받지 않고 한 번 더 되물었다. 답을 내지 못한 채 무거워진 날도 있었고, 노력한 만큼 내 것이 된다는 자리로 스스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04

이번 주의 씨앗

SEED

기준을 세운 사람이
그 기준을 의심할 때

내가 제안해 만든 자리에서 "과정이 깊지 않다"고 느낀 마음. 만든 사람만 볼 수 있는 얕음이 있다면, 그건 흠일까 다음 설계도일까.

흐릿한 꿈이 말하는 것 — 피곤할 때 꿈이 생생하고 쉬었을 때 흔적도 없다면, 꿈은 메시지가 아니라 부하의 눈금인지도 모른다.

아픈 말의 온도 — 걸린 말의 세기보다 내가 그 사람을 아끼는 크기가 아픔을 정한다는 발견.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 흐릿한 한 주 내내, 나는 남이 세운 기준 앞에서 내 기준을 찾고 있었다.

햇살(이다현) · 포근나루
『파도는 여전히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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