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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1 — 09.06 · 한 주의 새벽

기교가 아니라
태도라면

붙들기를 그만두자 잠이, 문장이, 자랑이 돌아온 한 주.

8 · 31 월 9 · 1 화 9 · 2 수 9 · 3 목 9 · 4 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섯 날, 다섯 편
9월 5일과 6일에는 새벽 글이 없다. 쉼도 그 주의 일부다.
01

새벽의 흐름

8월 31일 — 월요일

이날 글이 가장 오래 머문 자리는 남의 문장 앞이었다. 오후 토론을 앞두고서야 미뤄둔 카뮈를 펴 들었는데, 감탄은 곧장 나를 향한 물음으로 돌아왔다. 베껴 써도 내 문장이 되지 않아 슬프다는 자리에서, 나는 모자란 것이 기교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적는다. 사진 속 티파사가 폐허였다는 사실이 그 생각을 밀어 올렸다. 같은 풍경을 아름답게 보는 눈이 문장을 만든다는 것. 어두운 대목이 함께 있어 여기 옮기지 않지만, 글의 끝은 자유의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번 돈을 다음 배움에 넣었다.

9월 1일 — 화요일

개학 첫날의 글은 아이 앞에서 멈춰 있다. 맡기는 것이 아이의 자율을 위한 것인지 나의 편의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쓴다. 아이에게서 내 모습이 비칠 때 뿌듯한 대신 화가 치미는 것,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누워버리는 것까지 적어둔다. 어제 적은 미루는 습관이 하루 만에 아이의 얼굴로 되돌아온 셈이다. 오랜만의 진료에서 들은 말은 짧았다. 다른 것 말고 내가 편히 지내는 데에만 신경 쓰라는 말. 그 한마디를 붙들고 다음까지 간다.

9월 2일 — 수요일

두 달 쉬었던 평일 전례 봉사로 돌아가는 아침이다. 몸을 챙기려 쉬는 사이 주님과도 멀어졌다는 것이 이 글의 중심인데, 나는 그것을 자책이 아니라 셈처럼 적는다. 못 간 미사, 미뤄둔 고해, 어질러진 책상과 펴지 않은 책들. 막막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야훼 이레였다. 지난번 봉사에서 낸 실수도 숨기지 않고 적고, 산만함이 우울의 한 얼굴인지 묻는다. 걱정을 꺼내 곱씹지 말라던 당부를 스스로 어기는 자리까지 본 뒤, 글은 나를 품에 안아 달라는 기도로 닫힌다.

9월 3일 — 목요일

오랜만에 잘 잔 아침이라 글의 온도가 다르다. 곁에서 잠든 숨소리에 이끌린 낮잠 두 시간, 그리고 열 시가 되기 전의 취침. 애쓰지 않고 찾아온 잠이라 더 귀했다고 나는 적는다. 졸리다고 말하는 몸의 신호를 다시는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이 이번 주의 다른 날들과 가장 다른 문장이다. 밤을 지켜준 것이 더 할 일이 없어진 화면이었다는 대목은 조금 우습기도 하다. 감각이 그대로 남는 꿈 이야기를 지나, 오전의 빈 시간을 산책과 책으로 채우겠다는 계획으로 닫는다.

9월 4일 — 금요일

늦게 끝난 하루 뒤의 글인데 피로보다 자부가 앞선다. 이날 나는 스스로 컴맹이라 불러온 사람이 어떻게 앱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처음부터 되짚는다.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그것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뿐이라고 적을 때, 한 주 내내 나를 눌러온 '못 하는 나'가 잠깐 뒤집힌다. 한 번 발표하고 흘려보내기 아까워 모아둘 자리를 만들었다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다음엔 하나만 골라 깊이 가자는 결심도 함께 적어둔다. 내가 만든 것이 남에게 쓰이면 그것으로 나눔은 제 몫을 다한다고, 글은 그렇게 닫힌다.

02

새벽이 남긴 문장들

나만의 문장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기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8월 31일

다른 생각은 말고, 오로지 내가 편히 지내는 데에만 신경을 쓰라.

9월 1일

야훼 이레, 주님께서 마련하신다.

9월 2일

졸리다고 말하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을 거다.

9월 3일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와 그것을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뿐이다.

9월 4일
03

이번 주 결

한 주 내내 같은 물음이 얼굴을 바꿔 가며 돌아왔다. 나는 나를 어디까지 맡겨도 되는가. 월요일에는 미루는 나에게, 화요일에는 아이에게, 수요일에는 주님께, 목요일에는 잠에게, 금요일에는 내가 만든 것들에게. 앞의 사흘은 맡긴 자리에서 실망이 돌아왔다고 적혀 있고, 뒤의 이틀은 맡겼더니 오히려 편해졌다고 적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전환이 결심으로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화면이 꺼지고, 낮잠이 찾아오고, 발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번 주의 회복은 내가 붙든 것이 아니라 손을 놓았을 때 도착한 것의 모양을 하고 있다.

04

이번 주의 씨앗

SEED

기교가 아니라 태도라면,
나는 무엇을 연습해야 하나

살아 있음에 감탄하는 눈을 훈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맡기는 것과 놓는 것은 다른 일이다 — 아이에게 맡긴 자리에서는 실망이, 잠에게 놓은 자리에서는 회복이 왔다. 둘의 차이는 어디에 있었나.

자랑스러워서 모아두기 시작했다 — "부족한 사람"이라는 오랜 자기 규정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문장이 같은 주 안에 함께 살고 있다.

졸리다고 말하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을 거다.— 9월 3일

햇살(이다현) · 포근나루
『파도는 여전히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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