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정하나 묻다가
내 글 앞에 앉은 달
남이 세운 잣대 앞에서 오래 묻고 흔들리다, 내 원고를 끝까지 다듬는 자리로 돌아온 달.
숫자로 본 한 달
시간을 적어둔 글은 스무 편 중 한 편도 없어 시간 그래프는 만들지 않았습니다. 8월 초에 기록을 그만두기로 한 뒤로 그대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프의 수치 가운데 편수와 기록한 날은 실제 값이고, 감정 점수와 주제 비중은 글을 읽으며 매긴 해석입니다. 반복해서 나온 것들의 비율은 낱말을 세어 고른 뒤 글을 읽어 확인한 값입니다.
새벽의 흐름
9월은 개학과 함께 열렸다. 첫 주의 글은 무엇을 어디까지 맡겨도 되는지를 묻는다. 아이의 공부는 아이에게, 흐트러진 마음은 기도에, 지친 몸은 잠에 맡겨 본다. 앞의 이틀은 맡긴 자리에서 실망과 막막함이 돌아왔고, 뒤의 이틀은 애쓰지 않고 찾아온 단잠과 내가 만든 것을 남에게 건네는 기쁨이 돌아왔다. 졸리다는 몸의 신호를 넘기지 않겠다는 다짐도 이 주에 다시 적힌다. 다른 생각 말고 내가 편히 지내는 데에만 마음을 쓰라는, 진료에서 들은 한마디가 이 주를 붙들었다.
둘째 주의 글은 같은 물음을 여러 번 고쳐 쓴다.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가. 새로 시작한 자리에서 일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과정이 깊지 않다고 적는다. 쉽게 가던 공부 길이 막히자 노력한 만큼 내 것이 된다는 자리로 돌아오고, 내가 하는 일이 내 신념과 맞는지를 스스로 묻는다. 떠나기 전날에는 쉬고 싶은 마음을 존중하기로 하고, 몸이 가라앉기 전에 조절하자고 적는다. 밖의 잣대를 그대로 받지 않고 한 번 더 되묻는 손이 이 주의 모양이다.
셋째 주는 먼 길 위에서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앉는 것이 뿌듯했고, 돌아와서는 눈빛을 오래 마주친 다정이 마음에 남았다. 마음이 가장 낮았던 새벽도 같은 주에 있다. 무슨 일이었는지는 여기 옮기지 않는다. 그날의 글은 후회와 기도로 채워져 있었고, 주의 끝은 함께 쓰는 사람들이 대견하다는 말과 작은 살롱을 어떻게 열지 굴리는 아침으로 닫힌다. 흔들린 주에도 새벽 책상에 앉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넷째 주는 ‘잊었다’는 말로 열린다. 챙기지 못한 것들을 세던 글은 한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까지 내려갔다.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돌아왔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스스로 적었다. 이어 몸이 먼저 앓았고, 연휴 앞날의 글은 졸음 속에서 끊겼다. 연휴 끝 일요일, 원고를 펴고 지어낸 예를 걷어 내 직접 겪은 것으로 채우기로 하면서 이 주는 ‘부족해도 내 글이 좋다’에 닿는다.
마지막 사흘의 글은 나태라는 오랜 말을 다시 들여다보고,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끝맺지 못해서 스스로를 나태하다 느껴 왔다는 데 닿는다. 그래서 원고를 읽다 멈추지 않고, 걸리는 곳엔 표시만 하고 끝까지 넘어가 보기로 한다. 오래 묻어 둔 기억이 건드려진 날도 있었다.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그날 나는 온전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 곁에서 다시 중심을 잡았다. 달의 마지막 아침은 밥알을 후후 불어 강아지에게 건네며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는 말로 닫힌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졸리다고 말하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을 거다.”
“거친 날씨가 남긴 바다는
바람보다 더 거칠게 자신을 보여 준다.”
“옳은 선택이란 뭘까?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거지?”
“내 몸은 늘 정직해서 가라앉기 전에
조절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짙은 구름들 사이로 빼꼼 비춘 주황은
따스하게 마음을 채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살피는 것은
나를 확장시킬 흔치 않은 기회다.”
“부족해도 난 내 글이 좋다.”
“흡족하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마음이 가득 채워진다고나 할까?”
이 달의 결
9월은 남이 세운 잣대 앞에서 시작해 내 원고 앞에서 닫힌 달이다. 이 달의 글을 꿰는 실은 하나다 — 기준을 밖에서 빌려 오지 않고, 내 손으로 다시 세우려 했다.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가를 묻던 둘째 주, 값을 어떻게 매길지 셈하다 머리가 아프다고 적은 아침들, 내 원고가 정말 내 경험으로 서 있는지 묻던 시간이 모두 그 물음의 다른 얼굴이었다. 8월의 기운이 밖에서 왔다면, 9월에는 밖의 것이 늘 기운만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달의 끝에서 글이 돌아간 곳은 원고였다. 토씨 하나에도 걸리는 내 글을 지어낸 예 대신 직접 겪은 것으로 채우고, 실용서답게 간단명료해지도록 다듬었다. 지난 책보다 꼭지가 풍부해지고 더 책다워졌다는 문장이 그 고민 끝에 놓여 있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나태를 다시 이름 붙였다 —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 끝맺지 못한 것이라고.
이 달의 씨앗
나태가 아니라
끝맺지 못함이었다
이 달의 끝에서 오래 붙들고 온 말 하나가 이름을 바꾸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한 달이 가 있다고 탓하던 글이, 그렇게 빨리 흘렀다면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던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늘 분주한데 대부분이 시작에 머물러 있다는 것, 그래서 나를 괴롭힌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끝맺지 못함이었다는 것. 그렇다면 끝은 어디인가. 걸리는 곳에 표시만 하고 끝까지 넘어가 본 통독이 하나의 답을 보여 준다 — 끝은 흠 없이 마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끝까지 가 보는 것이라고.
옳다는 건 누가 정하는가 — 9월 둘째 주에 처음 적힌 이 물음은 달 내내 모양을 바꿔 돌아왔다. 값을 매기는 셈 앞에서, 내 원고 앞에서. 밖의 잣대가 흔들 때마다 글은 한 번 더 되물었고, 달의 끝에서는 「부족해도 난 내 글이 좋다」고 스스로 답했다. 그 답이 다음 달에도 버틸지, 이 달은 말 대신 다듬은 원고 한 벌을 남겼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느끼지만
그렇게 빨리 시간이 흐른 것을 보면
나는 뭔가 집중해서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