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그릇에
맑은 물을
구속이면서 힘이기도 한 시선을 닷새 내내 들여다본 한 주.
새벽의 흐름
새로 시작되는 두 과정이 한꺼번에 문을 여는 아침인데, 정작 내 준비는 비어 있었다. 이달에 읽기로 한 책을 한 권도 마치지 못했고, 3월부터 계속 이런 상태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날 글이 가장 오래 붙든 것은 자책이 아니라, 정리해야 할 일 앞에서 무엇을 확실히 해두어야 하는가였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두고 갈지, 적대감은 어디까지 내려놓을지를 하나씩 따져 적었다. 그리고 그 끝에 스스로 답을 냈다 — 엎질러진 것은 그대로 두고 새 그릇에 맑은 물을 채우면 된다고.
재등록 안내를 보내기로 한 날. 하루 먼저 만들어두고도 안내에 적힌 절차대로 하루를 더 기다렸다. 그러다 글은 뜻밖의 자리로 흘러갔다 — 남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먼저 내미는 사람에 대해 쓰다가, 나에게도 같은 면이 있다는 데 닿았다. 원래는 내 만족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몇 번의 일을 겪고 타인의 눈이 무서워졌다는 것도. 그런데 그 무서운 시선이 매일 아침 자리를 지키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구속인 것과 힘이 되는 것이 같은 하나라는 걸 이 글에서 처음 이름 붙였다.
독서 모임의 값을 다시 매기며 합당한 가격도 수상하게 느껴지는 시절을 배웠다. 광고를 어디에 언제 걸지, 어느 채널을 더 열지도 함께 적었다 —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두 번 나온다. 그 사이로 먹고 자기를 반복한 하루가 끼어들고, 하나뿐인 몸을 방치한다는 문장이 그 옆에 놓인다. 오랜만에 선 전례 자리에서 놓친 것들도 적었는데, 가장 집중해야 할 시간에 멍하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문장이 그날 가장 아픈 자리다. 그럼에도 이 자리가 나를 단단히 매어놓는 작업이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았다.
새 과정이 시작된 날 아침엔 배울 사람을 오래 들여다봤다. 차근차근 조곤조곤 말하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는 것, 그러려면 지금보다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것을 나란히 적었다. 그리고 9월에도 같은 새벽을 이어가게 되었다는 소식에 감사가 길게 이어진다. 얼굴을 모르는 사이에도 시간을 함께 쓰는 것만으로 쌓이는 게 있다는 걸 신기해했다. 뒷부분은 이십대의 자신감과 지금의 자기 의심을 나란히 놓는 데 쓰였고, 예전의 나는 지나간 사람으로 남는다고 적었다.
오랜만에 잠을 놓친 날이라, 글은 한 주를 처음부터 되짚는 데서 시작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무엇을 했는지 날짜별로 세어보는 문장들이 이 주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쓴 회고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땐 우울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가 그러고 나면 몸살같이 앓는다는 것도 이날 처음 적었다. 글이 늘지 않는 이유를 퇴고 없이 쓰기만 해서인지 스스로 묻기도 한다. 그 무거운 문단들 끝에 남은 건 오늘 가져갈 간식 걱정이었다 — 떡 하나가 부실할까 마음이 쓰였고, 새벽에 도착한 우롱차를 따라 마시며 원래 이런 맛이었나 갸웃했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이미 엎질러진 일은 그대로 두고,
새 그릇에 맑은 물을 채워 비워 나가면 된다.
의식하는 게 구속같다가도,
의식함으로써 힘을 얻기도 한다.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가 하는 일 모두
주님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오니
생각하는 건 쉬운데,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랑하면 사랑으로 표현을 하고,
걱정되면 걱정의 마음을 표현하자.
이번 주 결
한 주 내내 같은 것이 따라다녔다. 남의 눈.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졌다고 적은 날, 그 무서운 시선이 매일 아침 자리를 지키게 하는 힘이라는 것도 같은 문단에서 알아차렸다. 멍하게 서 있다 놓친 것을 다른 이들이 대신 메워준 날이 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만으로 쌓이는 것이 있다는 걸 신기해한 날이 있었고, 밖에서는 기색을 감추다 돌아와 앓는다고 적은 날이 있었다. 구속이면서 힘이고, 감춰야 할 대상이면서 나를 앉히는 손. 같은 시선이 닷새 동안 네 얼굴로 나타났다는 건 하루치 글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끝에 남은 말이 새 그릇이었다.
이번 주의 씨앗
구속이면서 힘인 시선을
어떻게 데리고 갈까
타인의 눈이 무서워졌다는 문장과, 그 눈 덕분에 매일 아침 앉는다는 문장이 한 문단 안에 나란히 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같은 하나를 어떻게 데리고 살 것인가의 문제로 보인다. 이름을 붙였으니 다음은 쓰임을 정할 차례다.
밖에서의 나와 돌아온 나 사이의 낙차 — 사람들 사이에서는 힘이 반짝 나고, 그 자리를 지키느라 쓴 힘만큼 돌아와 앓는다. 낙차를 줄이는 게 답인지, 낙차째로 데리고 사는 게 답인지 아직 모른다. 다만 그 낙차를 처음으로 문장으로 적었다는 것 자체가 이 주의 수확이다.
이미 엎질러진 일은 그대로 두고,
새 그릇에 맑은 물을 채워 비워 나가면 된다.— 8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