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으면서도
발은 나가 있었다
세 번 같은 물음이 되풀이됐다 — 왜 나는 분석적인 글을 못 쓰지, 이 자리의 값을 어떻게 매겨야 하지, 나는 이 자리에 왜 참석하는 걸까. 자격을 묻는 목소리였지만, 매번 물어놓고도 발을 빼지 않았다. 몸이 가장 무거웠던 주에 가장 멀리 다녀왔다.
새벽의 흐름
사흘을 쉬고 돌아온 자판이 낯설었다. 그 낯섦에서 출발한 글은 곧장 자기 글로 방향을 튼다 — "내 글을 분석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괜한 상처가 될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알고 싶은 마음과 다칠까 두려운 마음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있다. 그러다 처음으로 돌아간다. 일기가 곧 에세이인 줄 알던 시절의 자기를 두고 "용감하다 진짜"라고 적었다. 자조처럼 보이지만, 그 무모함이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걸 스스로 아는 문장이다.
약속 있는 날일수록 잠이 모자란다는 걸 스스로 알아챘다. "무의식중에 의도하는 건 아닐까." 몸이 어떤 날을 알아보고 미리 반응한다는 의심이다. 이날 가장 오래 남는 건 회비 이야기다. 값을 정할 때 이 자리의 가치가 아니라 접근성을 먼저 떠올렸다고, 값을 낮춰 부르는 손의 이유를 자기가 먼저 짚어냈다. 이어진 첫 낭독 앞에서는 발음 취향이 바뀐 것도 알아챘다 — 예쁘게 들리던 것이 이제는 답답하게 들린다고.
갑작스레 잡힌 출장 소식이 하루를 들뜨게 했다. "무료한 일상에서 출장 계획은 설렌다." 같은 글 안에서 책 이야기가 이어진다 — 모든 과정을 직접 해서 비용을 아꼈는데도 적자였고, 나눠준 게 판 것보다 많았다는 셈. 그런데 그 옆에,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전자책이 달에 한 권씩은 나간다고, 감사한 일이라고 적혀 있다. 손해와 감사가 한 문단 안에 같이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침에 쓰는 이유 자체를 묻고는 — 마음을 비우기 위함인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함인가 — 답은 미뤄둔 채 떠날 준비 목록을 적으며 닫는다.
떠나는 날 아침의 글은 온통 자격을 묻는 데 쓰였다. "그러면 나는 이 자리에 왜 참석하는 걸까?" 가르칠 만한 수준이 아닌 것 같아 불안하다면서도, 짐은 이미 싸여 있었다. 몸에 관한 대목이 길다 — 잠이 오지 않아 괴롭던 때와 하염없이 잠이 오는 지금이 똑같이 괴롭다고. 이 아침의 가장 어두운 대목은 여기 옮기지 않되, 없던 일로 두지도 않는다. 글은 스스로 정한 순서로 닫힌다. 오늘의 일에만 집중하자, 잘 씻고 약 챙겨 먹고 푹 자자, 하고.
낯선 도시에서 쓴 아침, 이날 글은 관찰로 가득하다. 물을 사러 나선 골목의 어둠이 무서웠다가 사람 소리와 티비 소리에 안심하는 대목, 긴팔 가디건을 입고도 한결 가벼워진 공기에서 계절이 바뀌는 걸 알아채는 대목, 센 수압에 부서져 사방으로 튀던 물줄기까지. 여행이 감각을 깨워 놓은 아침이다. 그 사이에 작은 승부 하나가 끼어 있다 — 인공지능이 단호하게 춘천은 닭갈비라 했지만 기어이 닭강정을 먹었고, 그 "묘한 승리감"을 적어두었다. 그러고는 오늘이 실전이라는 사실로 돌아온다. 아직 자신은 없지만 "일단 가서 해 보는 거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내용을 빤히 아는 책을 읽는다는 게
설레고, 기쁘고, 신난다."
"무료한 일상에서
출장 계획은 설렌다."
"혼자였다면 이렇게 꾸준히 뭔가를 하는 게
외롭고 막막했을 건데…
하나의 화면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렇게 힘이 된다니."
"내 몸을 때린 물줄기는 산산이 부서져
온 사방으로 튀었다."
"이렇게 한 계절이 가고 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저녁의 결
하루 종일 운전대를 잡고도 밤에 남긴 첫 문장이 "역시 나는 밖으로 돌아야 기운이 난다"였다. 노트북을 꺼내는 대신 공책을 펴고 받아 적었다는 대목이 이 밤의 핵심이다. 손으로 적으니 익숙해지더라고. 그리고 아침의 물음에 밤이 답한다 — "그러면 나는 이 자리에 왜 참석하는 걸까"가 "오늘은 기필코 제대로 습득하리라"로 바뀌어 있다. 자격을 묻던 자리에서 배우는 자리로 옮겨 앉은 하루다.
돌아오는 길이 길었고,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그 대화의 내용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여기 옮기지 않는다. 이틀 연속 장거리 운전으로 허리가 아팠는데도, 제목에는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이라고 적었다. 글은 기도로 닫힌다 — 편견으로 누군가를 먼저 대하지 않게,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함께 배우는 일에 감사하게 해달라고. 아침의 나는 "내가 뭘 가르쳐 줄 수 있지?" 하고 물었고, 밤의 나는 "기회가 되면 내가 직접 누군가를 도와야겠다"고 적었다. 몸의 무게는 그대로인데 마음의 방향만 바뀐 이틀이다.
이번 주 결
세 번 되풀이된 물음 — "나는 여기에 왜 있지"
화요일·수요일·금요일의 물음이 셋 다 하나였다. 자격을 묻는 목소리. 그런데 그 목소리는 물어놓고도 발을 빼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정반대로 움직였다
잠은 계속 모자랐고 허리는 아팠는데, 같은 기간에 마음은 계속 밖으로 나갔다. "역시 나는 밖으로 돌아야 기운이 난다."
혼자 하는 일에 대한 마음이 움직였다
수요일에 함께 쓰는 자리를 어떻게 묶을지 고민했고, 금요일에 "하나의 화면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렇게 힘이 된다니" 하고 스스로 답을 적었다.
이번 주의 씨앗
자격을 묻는 목소리와
먼저 나서는 발
하나. 먼저 나서는 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무턱대고 따라나서는 거다." 흥미로운 건 자책이 아니라 순서다 — 판단보다 발이 먼저다. 자격을 묻는 목소리는 나를 무엇으로부터 지키려는 걸까.
둘. 감상문과 비평 사이. 내가 두려운 것은 '내 글이 부족하다'는 결과일까, 아니면 '그 판단을 내가 아닌 누가 내린다'는 사실일까.
셋. 값을 매기는 손. 값을 낮춰 잡은 것은 계산이었을까, 값을 부르는 일 자체가 불편해서였을까. 무엇을 건네고 싶은지 묻기 전에 — 나는 그분들에게서 무엇을 받고 있었나.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일에 집중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발견하자.
난 오늘도 잘 살아 낼 거야.— 260821 금요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