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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0 — 08.16 · 한 주의 새벽

간 자리를
세는 아침

한 주 내내 못 간 자리를 세었다. 장지까지 가겠다던 결심, 그만두고 돌아선 길, 참석하지 못한 장례미사. 애도가 슬픔이 아니라 결석의 목록으로 쌓여 갔다. 그러다 금요일 아침, 처음으로 간 자리를 세기 시작했다. 누가 위로해서가 아니라 1월부터 직접 세어서 돌아선 한 주다.

8 · 10 월 8 · 11 화 8 · 12 수 8 · 13 목 8 · 14 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섯 날, 다섯 편 · 주말 이틀은 쓰지 않았다
01

새벽의 흐름

월요일 · 8 / 10

잠을 놓친 몸으로 부고 위에 앉은 아침. "하나의 생각에 멈출 수가 없어 혼란스러운 상태다"라고 적었다. 원인은 간단했고, 그래서 더 답답했다 — "말 그대로다. 잠이 부족해서." 흩어지는 문장 사이에 기쁨이 하나 끼어 있었다. 누군가를 도운 일이 내겐 꽤 의미가 있었다고. 그 옆에는 이런 문장도 나란히 있다. 내가 하는 일이 늘 수익보다 지출에 가까웠다는 것. 이 두 줄이 한 주 뒤쪽에서 다시 만난다.

화요일 · 8 / 11

가장 고요하고 가장 무거운 날. 가까운 분을 배웅하기로 마음먹고, 그 마음을 끝까지 해부했다. "오지랖인지도 모르겠다"에서 시작해 "하지만 내가 원하고 있다"로 가고, "마음이 무겁다"로 닫힌다. 그리고 배웅의 뜻을 스스로 정의했다 — 그건 순전히 나만을 위한 의식이었다고. 애도의 이유를 남이 아니라 자기 쪽에 두는 문장이다. 이날 삶의 무게와 죽음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도 처음 적었다.

수요일 · 8 / 12

결심이 무너진 자리. 장지까지 가겠다던 걸음을 목전에서 그만두었고, 돌아온 자리에서 자책이 시작됐다. "마음만 앞서고 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이렇게 또 작아진다." 침대와 한 몸이 되는 내가 너무 익숙하다는 문장도 이날 나왔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안다고 스스로 썼다 — 안다는 것과 한다는 것 사이의 거리가 이 주의 통증이었다. 작아진 채로도 글은 감사와 기도로 겨우 붙들어 맺는다.

목요일 · 8 / 13

이 주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날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없던 일로 두지도 않는다. 못 간 자리를 다시 세다가 "퇴화"라는 말까지 갔고, "이 우울은 언제쯤 끝이 날까"라고 적었다는 것만 남겨둔다. 그 아래에는 스스로 순서를 정한 문장이 있다. 다른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제때 먹고 제때 자는 규칙에 몸을 먼저 적응시키자는 것. 그리고 같은 날 글에 바다가 한 번 나온다 — 전날 저녁, 밀물 때였는지 구덕포의 바다가 난간을 넘어올 것처럼 눈앞에서 철썩였다고.

금요일 · 8 / 14

곤란함으로 시작해 방향이 도는 날. "나의 고민은 하등 쓸모없는 것 같다"로 열었는데, 쓰는 동안 손이 다른 데로 갔다. 1월에 고전 읽는 자리를 이끌기 시작했고, 3월에 포근나루를 신고하고 첫 전자책을 냈고, 4~5월에는 배우는 자리에 나가면서 종이책까지 냈고, 7월에는 진행을 맡는 자리에 섰다. 스스로 쓴 반년의 연보였다. 그러고 나서 문장이 이렇게 바뀐다 — "올해 많은 것들을 해냈다", "나를 좀 더 도닥여 줘야겠다." 못 하는 이유도 이날 스스로 짚었다. 미안한 마음과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다니, 하고 적으면서.

02

새벽이 남긴 문장들

"죽음을 바라다가도
종국엔 삶을 간절히 원하게 된다."

260810 월요일

"그 사람에 대한 내게 남은 기억들.
그와 나눈 감정들이 그대로 어느 상자에 담겨
봉인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260811 화요일

"삶의 무게와 죽음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60811 화요일

"그 시간이 밀물 때였는지
구덕포의 바다가 난간을 넘어 올 것처럼
눈 앞에서 철썩였다."

260813 목요일

"때로는 바다를 찾지 않는 것이
그만큼 마음이 무겁지 않아서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상의 여유마저 회피하는 것만 같은
은둔자가 되는 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260813 목요일

"내가 어떤 상태든지 간에 하루는 저물고, 날은 밝아 온다.
변함없는 규칙에 적응하지 못하는 건 나다."

260813 목요일

"붕 떠서 갈 곳 없던 나를 앉혀 주었다.
출판사 대표. 명함 속의 직함일 뿐이지만
내가 나로서 서는데 무게중심이 되어 주었다."

260814 금요일
03

이번 주 결

밀물 못 간 자리의 목록 나만을 위한 의식 아는데 못 하는 일 숨어드는 몸 주기는 쉽고 받기는 어렵고 퇴화라는 말 스스로 쓴 연보 도닥여 줘야겠다
04

이번 주의 씨앗

SEED

바다를 보러 가는 일이
내 마음의 눈금이 되었다

목요일 글에 나란히 놓인 두 문장이 이 주에서 가장 오래 남는다. 바다를 찾지 않는 날은 그만큼 마음이 무겁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여유마저 회피하는 은둔이 시작된 것일 수도 있다. 같은 사실을 두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 — 그러니까 나는 바다에 가는 횟수를 내 상태를 재는 눈금으로 쓰고 있었던 셈이다. 그 눈금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그리고 어느 쪽으로 읽어야 맞는 걸까. "왜 바다마저 외면하고 지나쳤던 것일까"라는 물음도 같은 날 함께 적혀 있다.

하나 더. 못 간 자리를 세는 대신 간 자리를 세는 연습 — 이건 금요일 아침에 스스로 해낸 일이다. 나흘 동안 결석만 적어 내려가다가, 다섯째 날에야 1월부터 짚어 올라갔다. 왜 그게 금요일에야 가능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방향을 돌린 건 위로의 말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센 숫자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주 내내 걸려 있던 질문 하나가 아직 열려 있다 — 나는 내가 왜 이런지 알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런 나를 그냥 데리고 살아야 하는가.

쓸데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내가 이뤄낸 시간들을 좀 더 아껴주자.— 260814 금요일 새벽에

햇살(이다현) · 포근나루
『파도는 여전히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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