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서
한 주의 앞쪽 사흘은 이 여름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자리였다. 그 사흘을 여기 옮기지는 않는다. 다만 수요일 아침의 죽 한 술에서 방향이 바뀌었고, 그다음은 백일홍이 줄지어 선 길과 붉은 벽돌집과, 세찬 비를 뚫고 간 빈소였다. 일곱 날 모두 썼다.
새벽의 흐름
8월의 첫 새벽. 화면 너머로 함께 쓰는 분이 들어오셨다. 그 전까지 온 새벽을 눈물로 보내고 있었는데, 사람이 한 명 앉았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갑작스레 돌아섰다고 적었다. 이 주의 첫 발견이 여기 있다 — 혼자 쓰는 힘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이 만드는 힘. 글의 뒤쪽은 다시 어두워졌다가, 마지막에 감사 인사로 닫힌다.
이 주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자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없던 일로 두지도 않는다. 오래 혼자 안고 있던 것을 처음으로 다 꺼내놓은 날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의 핵심이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였다는 것만 적어둔다. 새벽엔 멀리 사는 오랜 친구가 보낸 음료 한 박스가 발신인 없이 도착해 있었다.
방향이 바뀐 날. 며칠째 아무것도 넘기지 못한 걸 알게 된 어머니가 찹쌀죽을 끓여 주셨고, 아침부터 그걸 먹었다. 빈속에 마신 음료는 계속 울렁거렸는데 죽을 먹고 나서는 그 증상이 사라졌다고 썼다. 쏟아냄에 대한 문장도 이날 나왔다 — 가시 돋친 말이 되어 나간 감정이 상대를 아프게 했지만, 빠져나간 자리에서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금요일에 있을 포항 약속 하나가 기력을 되돌렸다. 글의 마지막 줄이 이 주 전체를 떠받친다.
밤을 새우고 앉은 자리. 한 시간만 눈을 붙였더니 뒷목이 당기고 속이 울렁거려, 무엇을 쓰는지도 모른 채 손만 계속 움직였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문장들 사이에서 문득 토르의 두 번째 기일이 떠올랐다. 지금 다른 아이가 자고 있는 그 방석 위에서 숨을 거뒀다는 것, 손 안에 남은 그날의 무게. 몽롱한 글이 가장 또렷한 문장 하나를 남긴 날이다.
포항 가는 날. 오늘의 문장이 "나가는 게 설레는 걸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설레는 걸까?"였다. 새벽엔 함께 쓰는 분들이 처음으로 전원 모였고, 신나 신나, 하고 적었다. 나머지는 배움에 대한 정직한 자기 진단으로 채워진다. 강의를 들으면 늘 70% 정도만 이해하고 나머지는 실습으로 완성해 간다는 것. 그리고 반대했던 누군가의 결정이, 도구를 만든 사람의 자리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는 것 — 하루라도 빨리 사람들 손에 쥐여 주고 싶은 그 마음을, 나도 내 도구를 배포하며 똑같이 가졌으니까.
낯선 집에서 맞은 새벽. 딱딱한 바닥에 몸이 눌려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사이사이 꾼 꿈에 소리 내어 웃다 두 번이나 깼다. 깰 때마다 창밖의 색이 달라져 있었다 — 잠들기 전엔 오랜만에 보는 그믐달이 구름 사이로, 자다 눈을 떴을 땐 형광처럼 빛나는 주황과 분홍이 하늘을, 지금은 무게가 느껴지는 짙은 구름이 땅에 닿을 듯. 전원 생활은 불편하기만 하다던 오랜 주장이 이날 힘을 잃었다.
아침에 부고가 왔다. 여름 초입에 쓰러져 오래 누워 계시던 분이 떠나셨다. 성당 식구들과 모여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비가 퍼부었고, 몸도 마음도 흠뻑 젖었다. 빈소는 생각보다 작았고 영정은 생각도 못한 생기가 있었다. 밝게 빛나는 미소가 오히려 더 슬프게 만들었다고 썼다. 나오는 길에 남겨진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아이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떠난 사람은 남은 사람의 얼굴에 자기를 두고 간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아침마다 이렇게 모여서 글 쓰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속에만 담고 있으면 고여서 썩기 마련인 불편한 감정들이
가시 돋친 말이 되어 쏟아져 나가 상대를 아프게 했지만,
빠져나간 가시들로 나는, 비로소 숨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임종을 지켜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복 된 일인지."
"너른 창이 있어 눈만 뜨면 천연이 내게 쏟아진다."
"언제나 아름다운 것에 약한 나는 자주 그런 것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나의 시선을 뺏는 것에서 자연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걸
지금에야 깨닫는다."
저녁의 결
한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길에 백일홍 나무가 줄지어 서서 맞았다. 도심과 떨어진 논과 과수원, 병풍처럼 둘러선 험하지 않은 산, 눈을 편안하게 하는 초록. "지난 한 주 어둠에 잠식 된 내 마음에 청량하게 들어 찼다"고 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배운 것을 건넸다 — 처음 뵙는 분들의 설정을 돕고, 아카이브 페이지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배우러 간 자리가 건네는 자리가 되었고, 그 사실이 이 주의 저녁을 가장 밝게 만들었다.
이번 주 결
이번 주의 씨앗
내 시선을 뺏은 것은
대부분 자연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나온 문장이 이 주의 가장 단단한 씨앗이다. 나는 오래 전원 생활은 불편하기만 하다고 주장해 왔다. 벌레와 풀 사이에서는 살 수 없다고. 그런데 낯선 집 너른 창 앞에서 그 주장이 힘을 잃었다. 지금 사는 집이 좋은 이유를 짚어보니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다는 것, 돌아오는 길에 날마다 다른 얼굴의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운전하다 눈을 뺏기는 것도 늘 경치였다. 취향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 붙들고 있던 다른 주장들도 한 번쯤 이렇게 되물어볼 만하다.
하나 더. 이 주에 나를 붙든 것들은 전부 말이 아니었다. 발신인 없이 도착한 음료 한 박스, 아침에 끓여 놓은 찹쌀죽, 화면 너머에 그냥 앉아 있던 사람. 설득도 위로의 말도 아니고, 그냥 놓여 있는 것. 내가 늘 "가르치지 않고 함께 쓴다"고 말해온 자리와 이 장면들이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어떻게든 기쁨을 찾고,
삶의 여정을 뚜벅뚜벅 걸어 갈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260805 수요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