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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0 — 07.26 · 주간 회고

지금은
그대로 있어

한 주 내내 원인을 찾아 뒤를 돌아보던 사람이, 목요일에야 방향을 바꿨다. 억지로 떠오르는 대신 가라앉음을 허락하는 쪽으로. 흔들린 믿음과 잠 못 이룬 밤이 나란히 놓인 한 주였다.

7 · 20 월 7 · 21 화 7 · 22 수 7 · 23 목 7 · 24 금 7 · 25 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여섯 날, 수요일엔 아침과 밤 두 번 써서 일곱 편

새벽의 흐름

월요일 · 7 / 20

무료함으로 한 주가 열렸다. 기쁨의 유통기한이 하루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 토요일의 기쁨이 일요일엔 이미 퇴색해 있었다는 것 — 을 담담히 적었다. 그리고 이 주 전체를 예고하는 문장이 여기 있었다. "나는 자꾸만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 원인을 알면 이 감정을 바꿀 수나 있을 것처럼."

화요일 · 7 / 21

진료실에서 들은 한마디가 이 주의 중심 사건이 되었다. 의식을 내려놓고 쓰는 글은 본모습이 아니라는 말. 그 말을 그냥 받아들이지도, 그냥 밀어내지도 않고 다른 곳에 다시 물어 다른 답을 얻었지만 "완전히 안심되지는 않았다"고 썼다. 흔들림이라기보다 검증에 가까운 하루였다. 같은 날 꿈에는 얼굴을 다 덮는 가면 같은 안경이 나왔다.

수요일 · 7 / 22

아침은 "방학이다. 신나는 방학~"이라는 설렘으로 열렸다. 그러나 "누가 나를 구해주지?"라는 물음이 곧 따라붙었고, 같은 문단 안에서 스스로 답했다. "결국엔 나 스스로 떠올라야 한다." 밤에 다시 쓴 글은 이 주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자리였다. 그 어둠 안에서도 밥을 차려준 아이에게 고맙다는 문장으로 하루를 맺었다.

목요일 · 7 / 23

전환이 왔다. 억지로 밝아지는 방식이 아니라 가라앉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몽롱쓰기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멈추지 않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는 것인데, 브레이크가 생겨버렸다"고 적으면서도, 화면 너머 같이 쓰고 있는 이의 손을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 주에서 가장 오래 쓴 날이자, 목소리가 스스로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 날이다.

금요일 · 7 / 24

한 주 내내 원인을 뒤지던 사람이 마침내 몸에서 답 하나를 건졌다. 잠.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잠 오는 느낌!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졸려서 어질어질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안도가 문장마다 배어 있는 아침이었다.

토요일 · 7 / 25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거의 자지 못했다." 회복이 직선으로 오지 않는다는 걸 이 두 편이 나란히 보여준다. 못 잔 채로 먼 길을 나서는 아침이었지만, 글의 끝은 절망이 아니라 잠을 구하는 조용한 기도였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모른다는 것이 늘 불안하다.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자꾸만 원인을 찾으려 뒤돌아보는 나.
나는 앞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진다."

260720 월요일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몽롱쓰기에서마저
나는 생각의 고삐에 당겨져 멈추게 되었다."

260723 목요일

"어쨌든 지금은 침잠의 시기라는 걸 받아들여야겠다.
인정하고 나면 떠오를지 모른다.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받아들여주자."

260723 목요일

"억지로 부양하려는 마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야.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를 의식한 거지.
그러니 지금은 그대로 있어."

260723 목요일

"배고프다는 감각이 느껴지는 걸 보니 살아있네."

260723 목요일

"이렇게 편해지다니!"

260724 금요일

이번 주 결

흔들린 믿음 원인을 찾는 사람 구원이 아니라 동행 잠, 그리고 몸 가면 같은 안경 침잠의 허락 스스로에게 거는 말 직선이 아닌 회복

이번 주의 씨앗

SEED

잘 보려고 쓴 것이 시야를 가릴 때 —
버리지 않고 깎아서 쓰기로 했다

화요일 꿈의 안경이 이 주에서 가장 밀도 높은 이미지였다. 잘 읽고 싶어 고른 것인데 얼굴을 다 덮는 가면 같았고, 무거웠고, 결국 읽고 쓸 수가 없어 하루도 못 되어 깎으러 갔다. 같은 주 월요일에 적어둔 문장 — 본래의 나와 타인이 보는 나의 격차가 크다는 것은 사회적 페르소나가 제대로 기능한다는 증거일지 모른다는 — 과 나란히 놓아보면, 두 글이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깎아서 쓰기로 했다.

하나 더. "억지로 부양하려는 마음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야" — 이 문장 하나로도 짧은 글 한 편이 된다. 회복이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라앉는 것을 허락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이야기. 내가 늘 쓰던 "돌멩이를 건진다"는 말과도 이어진다. 가라앉지 않으면 바닥에 손이 닿지 않으니까.

그러니 지금은
그대로 있어.— 260723 목요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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