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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9 — 07.05 · 주간 회고

질투를 캐묻다가,
용서 앞에 섰다

낯선 주제 하나를 사흘 붙들었다. 특별해지고 싶던 마음부터 믿음이 다치던 감각까지 내려갔고, 그 끝에서 용서라는 질문 앞에 섰다. 평소의 새벽보다 훨씬 깊은 층위로 내려간 한 주였다.

6 · 29 월 6 · 30 화 7 · 01 수 7 · 02 목 7 · 03 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 주말은 글이 없어 쉬어가는 이틀

새벽의 흐름

월요일 · 6 / 29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낸 아침이었다. 씻다가 속이 울렁이더니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새벽 미사도, 새 주소로 시작하려던 첫걸음도 다 미뤄졌다. 신청자 없는 기획, 참례하지 못한 미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하루가 겹쳐 짜증과 서글픔으로 번졌다. 몸에게 건넨 혹독한 말들 사이로, 선뜻 "나도 가고 싶다"라고 말하지 못한 서글픔도 조용히 얹혔다.

화요일 · 6 / 30

함께 공부하는 자리에서 첫 발표를 했다. 답지 않게 떨렸지만, 곁에 함께 쓰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났다. "느리지만 묵묵히 걷는 거북이"를 떠올리며 성실함을 이길 사람은 없다고 적었고, "좋아서"라는 이유 하나로 살아온 궤적을 처음으로 쭉 되짚어 보았다. 아픈 이를 위한 기도도 잊지 않은 하루였다.

수요일 · 7 / 1

'질투'라는 낯선 주제로 글쓰기 연습을 시작했다. 성경과 고전 속 질투 이야기를 따라가다, 내가 어릴 적 왜 질투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캐물었다. 특별해지고 싶던 마음, 다정함을 향한 인정욕구 — 오래 묻어둔 층위까지 스스로 내려간 하루였다.

목요일 · 7 / 2

질투 연습이 이어졌다. 먼저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한 장면 한 장면 되살려 적었다 — 이 주 전체에서 가장 따뜻한 문단이었다. 그 뒤로는 한 시절 가까이 지낸 관계에서 서서히 드러난 균열을 오래 풀어냈다. 믿음이 다치는 순간의 감각을 정직하게 마주한, 쉽지 않은 글쓰기였다.

금요일 · 7 / 3

질투 연습이 사흘째 이어졌다. 관계의 균열이 오래도록 이어졌던 시간, 그로 인해 겪은 마음의 병과 회복의 과정을 정직하게 풀어냈다. 오래 가라앉았던 시간과, 그 시간을 통과해 다시 밝은 쪽으로 걸어 나온 나를 담담히 적어 내려간, 이 주에서 가장 긴 새벽이었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성실함을 이길 사람이 없다.
꾸준히, 자기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인 거북이가 대단한 이유다."

260630 화요일

"특별하다는 것.
상대로 하여금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

260701 수요일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를 향해 눈을 뜨려고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던 모습. 그게 정말 아름다웠다."

260702 목요일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260703 금요일

저녁의 결

월요일 · 6 / 29

새벽엔 짜증과 서글픔이 가득했는데, 저녁엔 온도가 달라져 있었다. 발표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 그림책 콘티를 마침내 짜냈다는 작은 성취가 하루 끝에 놓였다. "신청자가 없으면 어때, 지금 당장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 실패를 겪어봐야 할 이유가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마음이 누그러진 밤이었다.

화요일 · 6 / 30

쓰던 일정표를 주간에서 월간 독서 일정표로 새로 짜는 실무 사이사이, 함께 일하는 파트너에 대한 성찰이 깊어졌다. "잘 아는 것과 잘 이해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는 문장이 그날의 중심이었다. 곁을 지켜준 이에 대한 감사, 그리고 삶과 죽음, 남겨짐에 대한 사색으로 하루가 저물었다.

수요일 · 7 / 1

어지럼증과 무기력이 이어진 하루. 처음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니 "내가 이걸 가르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 올라왔다. 그동안의 성과에 대한 자기 비판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다음에 쓰고 싶은 것들의 목록은 또박또박 적어 두었다 — 하고 싶은 마음은 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목요일 · 7 / 2

우울과 무기력이 이어진 하루. 좋아하는 모임조차 귀찮아 그저 눕고만 싶었다고 적었다. 그런 밤에도 저널만은 거르지 않았다 — "나를 위한 시간"이니까. 이어 꾼 듯한 두 편의 꿈, 정성스레 돌보던 아기와 자꾸만 어긋나던 오후의 장면을 오래 들여다보며, 꿈이 무언가의 상징일 거라는 예감을 가만히 붙들었다.

금요일 · 7 / 3

글쓰기 기록을 정리하는 루틴의 시간표를 손보았다. 그리고 매일 받는 질문 하나에 며칠째 붙들려 있었다 — "오늘, 남에게 묻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답이 있지 않았나요?" 아침에 나눈 질투의 기억이 자연스레 이 질문과 겹쳤다.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오래 서성였고, 지금 붙들고 있는 이 소재를 다른 형식으로 받았어야 했다는 아쉬움도 슬쩍 내비쳤다.

이번 주 결

몸이 보내는 신호 인정욕구와 특별함 질투라는 감정의 결 관계의 균열과 용서 가르치는 사람의 두려움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 잘 알기와 잘 이해하기 꿈의 상징 기도와 감사

이번 주의 씨앗

SEED

이 소재, 에세이가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받았어야 했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흘, 낯선 주제 하나를 붙들고 오래 묻어둔 기억까지 캐물었다. 특별해지고 싶던 마음, 부러움이 다른 감정으로 번지던 순간들, 믿음이 다치던 감각, 그리고 그 상처를 지나 용서라는 질문 앞에 다시 서기까지 — 평소의 새벽 글보다 훨씬 깊은 층위로 내려간 닷새였다.

금요일 저녁, 스스로 이미 짚어냈다. "이번 소재를 에세이가 아닌 다른 형식으로 받을 걸 그랬다"고. 가족·관계 소재는 소설로 가져가기로 한 방향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는 알아차림이다. 이 닷새의 기록을 다시 읽으며 어떤 인물과 어떤 장면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 그리고 금요일에 던진 "용서"라는 질문이 그 이야기의 어디쯤에 놓일 수 있을지 천천히 짚어보는 것이 다음 한 걸음이다.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260703 금요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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