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한 문체를
손으로 옮긴 달
지난달에 내 문체는 이대로 좋다고 선언했다. 이번 달에는 그 선언을 연습으로 옮겼다. 한 주제를 사흘 붙들어 쓰고, 3인칭 습작을 시작하고, 내가 매일 하는 이 글쓰기가 정확히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했다. 스물네 편의 새벽이 남았다.
숫자로 본 한 달
그래프의 수치 가운데 편수와 기록한 날은 실제 값이고, 감정 점수·주제 비중·키워드 비율은 글을 읽으며 매긴 해석입니다. 흐름을 보는 참고로 읽어주세요. 이번 달은 글쓰기에 걸린 시간을 적어둔 날이 스물네 편 중 이레뿐이라, 시간 그래프는 넣지 않았습니다.
새벽의 흐름
한 단어를 붙들고 사흘을 갔다. 여느 때 같으면 문장이 이리저리 튀는데 이 사흘만은 한 줄기로 이어졌고, 마지막 날에는 한 시간을 넘겨 썼다. 올해 들어 가장 길게 쓴 한 편이다. 무엇을 썼는지는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오래 미뤄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간 경험이 그전에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이 사흘이 앞으로 쓸 소설의 예행연습이 되었다는 것만 적어둔다.
몸 이야기가 올라온 주다. 장마의 습기에 기운이 빠지고, 낮과 밤이 뒤집힌 생활을 스스로 점검했다. "건강한 습관에 대하여"라는 문장을 걸어놓고 무엇부터 고칠지 하나하나 적어 내려갔다. 같은 주에 새 역할도 시작했다. 처음 맡아본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도, 받은 강사료를 두고 "창업 이래 가장 큰 돈"이라 적고는 기뻐서 그대로 남편에게 건넸다.
이 달에서 가장 밝은 주다. 화요일에는 글에 "우울의 늪"이라 제목을 달았는데, 수요일에 "일단 쓰기"로 방향이 바뀐다. 목요일에는 새로 해보고 싶은 것 하나가 떠오르자 "마음이 확 펴지는 느낌"이라고 적었다. 금요일 새벽 한 시, 일주일 전에 도착해 있던 문의 하나를 뒤늦게 발견하고는 자책에 머무르지 않고 곧장 구조를 고쳤다. 기수제를 상시 모집으로 바꾸고 신청서와 안내 글을 전부 다시 짰다. 그리고 토요일, 새벽을 함께 쓰겠다는 분이 둘 늘었다.
원인을 찾아 계속 뒤를 돌아본 주다. 화요일 진료실에서 들은 한마디에 오래 믿어온 것이 흔들렸고, 그 말을 그냥 받아들이지도 그냥 밀어내지도 않고 다른 데 다시 물었다. 수요일 밤에는 이 주에서 가장 깊이 내려갔다. 목요일에 방향이 바뀐다 — 억지로 떠오르는 대신 가라앉음을 허락하는 쪽으로. 금요일에는 몸에서 답 하나를 건졌다. 잠.
마지막 닷새는 이 달에서 가장 깊이 내려간 자리다. 가족 안에서 내 자리를 잃었다고 느낀 며칠이었고, 글은 눈에 띄게 짧아졌다. 문장은 한 가지만 되풀이한다 — 모든 것의 원인이 나라는 것. 스스로에게 내리는 판결이 다른 목소리를 전부 덮은 날들이었다.
그 글들은 여기 옮기지 않는다. 다만 없던 일로 두지도 않는다. 이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까지가 이 달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닷새 중 나흘, 새벽마다 자리에 앉아 썼다. 쓸 것이 가장 없다고 느낀 날에도 썼다.
저녁의 결
저녁 글은 아침 글과 결이 다르다. 아침이 안으로 파고든다면 저녁은 밖을 정리한다 —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나는 무엇을 했고,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가. 7월 1일은 그 둘이 겹친 날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와 하고 싶은 일 세 가지가 번호까지 매겨져 한 문단 안에 나란히 있다. 이튿날은 온통 꿈 이야기다. 아침에 꾼 꿈과 낮잠의 꿈이 서로 이어졌다는 걸 발견하고 놀라워하다가, 쓰던 중에 "적다 보니 꿈 이야기가 더 많네" 하고 스스로 알아챈다.
처음으로 진행을 맡은 날의 기록이다. 실수한 대목을 하나하나 짚어 적어놓고는, 끝에 가서 이렇게 쓴다. 이미 가르치고 있는 분들이 새삼 존경스럽다고. 자기 몫은 작게 세고 남의 몫은 크게 세는 버릇이 이 짧은 글에 다 들어 있다.
7월의 저녁 글 다섯 편 가운데 느낌표가 가장 많은 글이다. 함께 쓰겠다는 분이 늘었다는 소식에, 만들어둔 습관 다이어리를 대대적으로 손봐 나눠주고, 다음 날 또 한 분의 신청을 발견한다. "기다리니까 되는구나"라는 한 줄이 이 달의 답 같다.
새벽이 남긴 문장들
"하루를 삼킨 태양이 부지런히 쫓아 온다."
"머릿속 검열관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글 솜씨가 좋아지든 말든 일단 쓰고 본다.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지면 흉곽 안의 실체 없는 마음이
한껏 구겨져 있다 쫙 펼쳐지는 느낌이 든다."
"좋은 글은 좋은 양분 안에서 탄생한다.
나의 바탕부터 채우자, 조급해 할 것 없어."
"지금은 침잠의 시기라는 걸 받아들여야겠다.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받아들여주자."
이 달의 결
이 달의 씨앗
매일 하던 것에 이름을 붙이자,
비로소 연습이 되었다
7월 15일 글에서 처음으로 내가 하는 세 가지 글쓰기를 갈라 정의했다. 눈뜨자마자 검열 없이 쏟아내는 글과, 아침에 쓰되 스스로 다듬는 글과, 밤에 손으로 적는 글. 셋이 어떻게 다르고 나는 왜 그중 하나를 택하는지를 논증하듯 적어 내려갔다. 그전까지는 그냥 매일 쓰는 일이었다. 이름을 붙이고 나서야 무엇을 연습해야 하는지가 보였다.
같은 달에 3인칭 습작을 시작했다가 곧 막혔다. "읽을 땐 명확한데 내가 쓰려니 왜 그렇게 막히는지." 읽기와 쓰기가 다르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문장이 이 달에만 세 번 나온다. 아직 넘지 못한 문턱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다음 달의 과제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이 달 가장 자주 등장한 말은 게으르다였다. 그런데 같은 글 안에 몸의 사정이 정확하게 적혀 있다. 조건을 다 알면서 결론은 늘 의지 부족으로 닫는다. 판사와 피고를 혼자 다 맡고 있다 — 여기서 한 편의 글이 나올 것 같다.
특출나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꾸준히의 힘이 나를 소설가의 자리로
데려갈 거라는 것을 안다.— 260718 토요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