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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ろ
포 근 나 루 · 나 루 의 밤

2차 · 중 「부모님과 나」

나는 왜
아버지가 부끄러웠는가

'나'는 배운 사람의 눈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눈에 아버지는 촌스럽고, 형은 세속적이고, 집은 좁다.
다만 그 눈이 무엇을 보게 했는지보다,
무엇을 보지 못하게 했는지가 이 이야기의 자리다.

여 는 질 문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서로의 감각을 맞추는 자리

1매미 소리를 듣고 슬퍼져 본 적이 있는가

"여름에 고향으로 돌아와 귀청을 찢는 듯한 매미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슬퍼지곤 했다."

p. 122

시끄러운 소리인데 슬프다. 이 어긋남이 어디서 오는지 각자 답이 다를 것이다. 소리 말고도 좋다. 어떤 냄새, 어떤 빛, 어떤 계절의 공기가 나를 이유 없이 가라앉힌 적이 있는가.

2슬픔의 종류가 바뀌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

"나의 애수는 올여름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점차 정조(情調)가 바뀌었다. 유지매미 소리가 애매미 소리로 바뀌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사람의 운명이 커다란 윤회 속에서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p. 123

'나'는 슬픔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슬픔이 된 것을 안다. 내 마음에서 그런 교대를 알아챈 적이 있는가. 무엇이 무엇으로 바뀌었는가.

논 점 하 나

아버지의 기쁨은
왜 불쾌했는가

'나'는 아버지와 선생님을 나란히 놓고 잰다. 그리고 아버지가 진다

"입으로는 축하한다면서 마음속으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닌데 무슨 대단한 일처럼 기뻐해주는 아버지보다 내게는 오히려 고상해 보였다. 나는 결국 아버지의 무지에서 나오는 촌스러움이 불쾌했던 것이다."

p. 105
파 고 들 지 점

배운 사람은 전에 안 보이던 것을 본다. 아버지의 기쁨이 실제보다 부풀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본다. 그것을 감추지 않고 '불쾌했다'고 적은 것도 숨김이 없다. 그러나 그 눈이 열린 대가로 무엇이 닫혔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나'가 실제로 한 일은 대학을 졸업한 것뿐이다. 이룬 것 없이 시선만 먼저 높아지는 일이 있다. 배움이 사람을 보는 눈을 넓히는가, 좁히는가. 넓힌다면 왜 '나'는 아버지 한 사람조차 담지 못하는가.

그리고 아버지의 대답이 이 판 전체를 흔든다.

"애써 정성을 다해 키운 아들이 자신이 죽은 후에 졸업하는 것보다는 살아 있을 때 졸업해주는 것이 부모한테는 기쁜 일 아니겠냐? (…) 그러니까 졸업은 너한테보다는 나한테 다행인 거야. 알겠지?"

p. 105

아버지는 자기 기쁨이 아들의 성취와 무관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대단한 일이 아님도 알고 있다. 그저 자기가 살아서 그걸 본 것이 다행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무지한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가 본 '촌스러움'은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아버지에게 있었는가, 아버지를 보는 눈에 있었는가.

한 겹 더

비교한 행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도 있다. 사람을 나란히 놓고 재는 일은 애초에 가능한가. '나'는 왜 하필 그 둘을 같은 저울에 올렸는가. 저울에 올리는 순간 이미 정해지는 것이 있지 않은가.

같은 아버지가 이런 말도 한다

"부르지 않아도 되지만, 부르지 않으면 또 뭐라고들 하니까."

p. 110

누구를 부르고 부르지 않을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뒷말을 걱정한다. 105쪽에서 자기 몫의 기쁨을 당당히 말하던 사람과, 남들이 뭐라 할지를 살피는 이 사람이 하나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는다. 무지한 사람이라 부르면 105쪽의 대답이 걸리고, 마음이 깊은 사람이라 부르면 뒷말을 걱정하는 이 장면이 걸린다. 어느 이름도 맞지 않는다면, '나'가 붙인 '촌스러움'이라는 이름은 맞았는가.

논 점 둘

교육은
자식을 데려간다

곁에 두고 싶어 하면서 동시에 멀리 보내려 하는 마음

"공부를 시킨 결과 형은 지금 먼 곳에 있다. 교육을 받은 결과 나는 또 도쿄에서 살 생각을 굳혔다."

p. 119

"자신이 죽은 후 고독한 어머니를 텅 빈 집에 남겨두는 것도 심히 불안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도쿄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으라고 강권하는 아버지의 생각에는 모순이 있었다."

p. 119
파 고 들 지 점

교육은 자식을 부모에게서 떼어놓는 일인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자기 곁을 비운 셈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시켰다면, 그 선택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아버지는 자식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기 곁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 중 어느 쪽도 놓지 않는다. 놓지 않는다는 것은 결정을 미룬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뤄진 결정은 결국 아들이 진다 — 남으면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고, 떠나면 어머니를 텅 빈 집에 두는 것이 된다.

다만 그것을 '모순'이라 이름 붙인 쪽은 아버지가 아니라 '나'다. 아버지는 한 번도 자기 마음이 모순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두 마음이 동시에 참인 자리가 사람에게 있는가. 있다면 그것을 모순이라 부르는 일은 정확한가.

한 겹 더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서로 부딪힐 때, 자식은 무엇을 근거로 고르는가. 이 대목에서 '나'는 고르지 않는다. 미룬다. 미루는 것도 하나의 선택인가.

논 점 셋

같은 '내가 죽으면'을
두 사람에게 듣다

한쪽은 웃음을 띤 가정이었고, 다른 쪽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사실이다

"내가 죽으면 부디 어머니를 잘 모셔라."

p. 127

'나'는 이 말을 두 번 듣는다. 졸업하던 날 저녁 선생님이 사모님에게 했던 말, 그리고 지금 아버지의 말.

파 고 들 지 점

죽어가는 아버지 앞에서 '나'가 떠올린 것은 아버지의 병이 아니라 그날 저녁 선생님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몇 쪽 뒤에 이 문장이 온다 — "나는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는 것보다, 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선생님에게 경멸당하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다." (p. 129–130)

미숙하다고 부르기는 쉽다. 다만 그렇게 부르고 나면 더 물을 것이 없어진다.

왜 사람은 언제나 곁에 있어줄 사람 앞에서 덜 두려운가. 두렵지 않다는 것은 믿는다는 뜻인가, 함부로 해도 된다고 여긴다는 뜻인가.

아버지에게는 야단맞는 것을 걱정하고 선생님에게는 경멸당하는 것을 걱정한다. 두 두려움은 층이 다르다. 평가받는 관계와 평가받지 않는 관계 중 어느 쪽이 더 깊은 관계인가.

'나'는 선생님을 사랑해서 두려운가, 인정받고 싶어서 두려운가. 그 둘은 구분되는가. 구분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랑이라 불러온 것들 가운데 몇이 여기에 해당하는가.

논 점 넷

형의 '에고이스트' 비판은
정당한가

형은 선생님을 본 적이 없다. 동생의 말만 듣고 판단한다

"에고이스트는 안 좋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려는 것은 뻔뻔한 생각이니까 말이야. 자기가 갖고 있는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는 건 잘못이지."

p. 139
1 차 와 이 어 지 는 자 리

상편 논점 2에서 우리는 선생님의 은둔이 속죄인가 회피인가를 물었다. 형의 말은 그 물음에 작품 안에서 날아온 답 하나다. 형은 '회피' 쪽에 선다. 다만 그는 선생님의 과거를 모른다. 이유를 모르는 사람의 판단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파 고 들 지 점

세속적인 말이라고 물리치기는 쉽다. 그런데 틀린 데를 짚기가 어렵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은 누군가의 노동 위에 얹혀 있다. 선생님이 쓰는 돈도 어디선가 온 돈이다. 재능을 쓰지 않는 것을 개인의 취향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몫을 지지 않는 일이라 불러야 하는가.

그런데 무엇을 '재능을 발휘한 삶'이라 부를지 정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형의 잣대는 결국 세상의 잣대다. 그리고 선생님이 등진 것이 바로 그 세상이다. 등진 사람을 그 세상의 자로 재는 일은 공정한가. 그렇다면 무엇으로 재야 공정한가 — 잴 자가 아예 없다는 답도 답인가.

한 겹 더

이 비판은 선생님만 겨누지 않는다. '나'도 졸업한 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형이 정말 겨눈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왜 그 자리에서 형에게 대꾸하지 못했는가.

논 점 다 섯

자유를 얻어 말하고,
그 자유를 영원히 잃는다

상편에서 말하지 않겠다던 사람이 이제 말하겠다고 한다. 그 조건이 자기 죽음이다

"따라서 그 자유를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하지 않으면 내 과거를 자네의 머리에 간접적인 경험으로서 가르쳐줄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네."

p. 144

'자유를 얻었으니 말하겠다. 하지만 그 자유는 다시 영원히 잃어야만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며 그 의미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p. 145

"이 편지가 자네 손에 닿을 무렵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걸세. 진작 죽었겠지."

p. 146
파 고 들 지 점 하 나

선생님은 왜 '나'가 상경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는가. 얼굴을 보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만나서 하는 말과 편지로 남기는 말은 무엇이 다른가. 말은 반응을 부르고, 글은 반응을 허락하지 않는다.

살아서는 끝내 못 할 말이 있다. 죽음을 담보로 걸어야만 열리는 입이 있다면, 그것은 한 사람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값이다. 그런데 값을 높이 치른 말일수록 받는 사람은 거절할 수 없게 된다. 반박도 위로도 되돌려 보낼 곳이 없다. 죽음을 예고한 글은 읽는 사람의 남은 평생에 얹힌다.

받는 사람이 거절할 수 없다면, 그것은 여전히 가르쳐 주는 일인가. 무엇을 건넸느냐가 그것을 정하는가, 상대에게 거절할 자리를 남겼느냐가 정하는가.

파 고 들 지 점 둘

'나'는 아버지가 위독한 자리를 두고 기차를 탄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두고 죽었다는 사람에게 간다.

이 선택을 옳다 그르다로 판정하지 말고, 먼저 이렇게 묻자. 그 순간 '나'를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는가. 사랑인가, 궁금함인가, 오래 갈망해온 것이 마침내 열린다는 신호인가. 그리고 우리는 각자 그런 순간에 어느 쪽으로 발을 뗐는가.

이 편지가 3차(9월 15일) 「선생님과 유서」의 전부다. 중편은 그 문 앞에서 끝난다.

마 무 리 질 문

작품에서 나에게로

이야기를 덮기 전, 각자의 자리로 가져가 보는 물음

6부모를 '다시 보게 된' 순간이 있었는가

어느 날 부모가 전과 다르게 보였던 때. 작아 보였든, 처음으로 커 보였든. 그때 나는 무엇을 알게 되었고 무엇을 잃었는가. '나'처럼 불쾌했는가, 아니면 미안했는가. 그 감정을 그때 부모에게 말했는가.

7가까운 사람보다 먼 사람의 시선이 더 두려웠던 적이 있는가

가족의 서운함보다 어떤 사람의 실망이 더 무서웠던 때. 그 사람은 누구였고, 나는 그에게서 무엇을 얻고 싶었는가. 지금 돌아보면 그 두려움은 정당했는가.

나는 그때 그 등불이
소리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마음』 중 · p. 116
덧 붙 이 는 말

이 문장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

"깜깜한 가운데서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하고 어수선한 도회에서 내게는 선생님의 집이 한 점 등불 같았다. 나는 그때 그 등불이 소리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얼마 후에는 그 등불도 픽 꺼지고 말 운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것 역시 모르고 있었다."

p. 116

이 대목에는 '나'가 둘 있다. 등불을 보고 있던 그때의 '나'와, 그 불이 꺼진 것을 다 보고 나서 이 문장을 적고 있는 '나'.

"알지 못했다"는 말은 나중의 '나'만 쓸 수 있다. 우리는 결말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로,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을 읽고 있다.

나에게 등불이었던 사람은 누구였는가. 그때 나는 그 불이 무엇을 태우고 있는지 알았는가.

함 께 읽 는 길
1차상 · 선생님과 나7/21 (화) · p.16–103
2차중 · 부모님과 나8/18 (화) · p.104–147
3차하 · 선생님과 유서9/15 (화) · p.148–274

나쓰메 소세키 『마음』 · 현암사 · 송태욱 옮김
인용한 쪽수는 모두 이 판본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