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 상 「선생님과 나」
상편에서 선생님이 내놓은 과거는 진실이지만 전부가 아니다.
그가 감춘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만 감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서로의 감각을 맞추는 자리
이 소설에서 선생님의 이름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왜 소세키는 두 사람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이름 없이 '선생님'이라 불리는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
바닷가에서, 서양인과 함께 있던 선생님. '나'는 왜 그 장면에서 그에게 끌렸을까? 무엇이 그를 특별해 보이게 했나?
작품 안에 이미 논쟁이 놓여 있다
"선생님의 과거가 낳은 사상이라서 저는 중요시하는 겁니다."
p. 90사상은 사상으로 판단하면 된다. 내 과거를 알 필요는 없다.
사상은 경험에서 자란다. 과거를 모르면 그 사상도 모르는 것이다.
정말 별개라면, 선생님은 왜 그토록 필사적으로 감출까? 별개인 것은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
다만 선생님 편에도 설 자리가 있다. 우리는 저자의 삶을 몰라도 책에서 배운다. 성경도, 논어도 그렇게 읽어왔다.
일하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고, 홀로 무덤을 찾는 삶
"나는 남한테 속았다네. 그것도 피를 나눈 친척한테 속았지. 나는 결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네."
p. 88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 삶 자체가 형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갚아지지 않는다. 멈춘 것과 갚는 것은 다르다.
그가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그 돈은, 바로 그 배신의 결과로 남은 돈이다. 그는 매일 그 돈을 쓰며 산다.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선생님은 여러 번 분명하게 거절한다
진심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의 집요함이 결국 선생님을 열게 한다.
상대가 거절하는 영역을 반복해서 두드리는 일이다. 오늘의 감각으로는 경계를 넘는 행동에 가깝다.
배움에는 상대의 동의가 필요한가? 스승이 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제자가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지키려던 마음이 지키려던 사람을 외롭게 할 때
"하지만 그이는 세상을 싫어하거든요. 세상이라기보다 요즘은 인간이 싫어진 걸 거예요. 그러니 인간의 한 사람인 저를 좋아할 리 없지 않겠어요?"
p. 57자기 안의 어두운 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옮기지 않으려는 배려다.
알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결정을 혼자 내린 것이다. 부인은 이유도 모른 채 외로움만 감당한다.
부인의 이 말은 반박인가, 호소인가?
누구에게나 베푸는 친절과 나를 향한 관심에서 나오는 친절은 분명히 구분된다. 부인은 그 상냥함 안에서 자기가 손님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생님이 '나'에게 유산 정리를 권하는 대목
선생님은 '나'에게 아버지 생전에 재산 문제를 분명히 해 두라고 충고한다. 자기 과거는 끝내 감추면서, 그 과거에서 나온 결론만 건네는 것이다.
이것은 진심 어린 조언인가, 자기 상처를 남에게 투사하는 것인가?
과거는 감추고 결론만 주는 가르침은 정직한 가르침인가?
이야기를 덮기 전, 각자의 자리로 가져가 보는 물음
있었다면 누구이며,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없었다면, 그를 구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이유로 동경했던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했는가? 실망했는가, 더 가까워졌는가?
그는 우리보다 더 큰 일을 겪은 것일까,
아니면 다만
건져 올려지지 않았을 뿐일까.
| 1차 | 상 · 선생님과 나 | 7/21 (화) · p.16–103 |
| 2차 | 중 · 부모님과 나 | 8/18 (화) · p.104–147 |
| 3차 | 하 · 선생님과 유서 | 9/15 (화) · p.148–274 |
나쓰메 소세키 『마음』 · 현암사 · 송태욱 옮김
인용한 쪽수는 모두 이 판본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