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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창

切創

도란도란 · 2026.07

들어가며

절창(切創)은 빼어난 노래(絕唱)가 아니라 칼에 베인 상처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인물, 오언(烏焉)'글자 모양이 비슷해 틀리기 쉬운 글자'라는 뜻이다. 제목도 이름도 잘못 읽히도록 지어졌다. 그 어긋남이 이미 이 소설의 태도다.

상처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의 마음과 기억을 읽는 소녀가 있다.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는 사업가이자 범죄조직의 보스인 문오언을 만나 저택에 들어가고, 오언은 그 능력을 자기 목적에 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사람은 두 사람 중 누구도 아니다. 저택에 입주해 소녀에게 독서를 가르치던 독서교사다.

그러니까 이건 읽기에 관한 소설이다. 읽는 능력을 가진 인물, 읽히기만을 원한 인물, 그 둘을 읽어 우리에게 옮긴 화자. 그리고 그 화자를 읽고 있는 우리.

누가 누구를 읽는가

세 사람人物

아가씨 — 읽는 사람, 그리고 거절한 사람

보육원 출신. 타인의 상처에 손을 대면 그 마음과 기억이 건너온다. 오언에게 새 이름과 새 옷, 저택을 받았지만 스스로를 "고용된 노비"라 부른다. 오언이 자기 몸을 그어 읽히기를 요구했을 때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물러섰다.

문오언 — 읽히려는 사람

범죄조직의 보스. 소설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유일한 인물이면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인물. 오언(烏焉)은 '글자 모양이 비슷해 틀리기 쉬운 글자'라는 뜻이다. 말하는 대신 자기를 베어 내밀고 "이리로 와"라고 명령한다.

독서교사 — 옮기는 사람, 그리고 피해자

화자 '나'. 남편을 오언에게 잃은 사람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람의 "~습니다" 진술로만 두 사람을 만난다. 오언을 총으로 겨눴던 이 사람이, 마지막에는 오언이 옳았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간다.

읽은 사람만 펼치기

무슨 일이 있었나

줄거리와 결말 — 아직 안 읽으신 분은 접어두세요
  • 아가씨는 저택에서 오언이 시키는 대로 사람들의 상처를 읽는다. 독서교사가 입주해 그녀를 가르친다.
  • 266~267쪽. 오언이 자기 쇄골 아래를 그어 상처를 내고 "이리로 와. 네가 직접." "내용은 줄줄 읊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읽어."라고 요구한다. 나만 읽겠다고 약속하면 싫어하는 일은 시키지 않겠다고, 그게 싫다면 더 많은 사람의 머릿속을 더 자주 들여다보며 살게 될 거라고 덧붙인다.
  • 아가씨는 다가가는 대신 두 손을 등 뒤로 감추고 한 걸음 물러난다. "난 어차피 그런 일을 위해 고용된 노비니까. 당신한텐 그거면 됐지?"
  • 329쪽. 독서교사가 총으로 오언을 위협해 어딘가로 향하는 차 안. 오언이 "미안합니다"라고 하지만 화자는 변호사를 통해 하라고 자른다.
  • 오언이 『햄릿』의 대사를 읊는다. "그것이 지금이라면 앞으로는 오지 않을 테고, 다음번이 아니라면 지금 오겠지요." 그 지시대명사가 죽음임을 화자가 알아챈 순간, 오언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SUV와 충돌한다.
  • 330~331쪽. 아가씨가 깨져 피 흐르는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린다. 화자는 속으로 외친다. "읽지 마.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마." 아가씨의 손은 상처에 머물렀다가 뺨을 쓸며 목으로 내려가고, 그러다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해 귀를 댄다. 그가 입을 열어 말하려 하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 335쪽. 오언은 사망. 병원에서 화자는 아가씨에게 한마디 전하려다 결국 아무 말도 고르지 못한다.
  • 마지막. 몇 해 뒤, 어느 섬. 아가씨는 수녀복을 입고 아이들과 산다. 싸운 아이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때리고 할퀴고, 상처를 주면 안 돼. 사과할 거지?"라고 말한다. 화자는 그 모습을 보며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다. 도착하지 않은 채 소설이 끝난다.

이 소설의 심장

손의 이동

266~267쪽 · 살아 있는 그 두 손을 등 뒤로 감추고
한 걸음 물러난다
330~331쪽 · 죽어가는 그 깨진 머리에 손을 올리고
귀까지 가져간다

살아서 구했다가 거절당한 것이 소원이 되었다. 그래서 화자가 "읽지 마.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마"라고 외친 것이다. 그러니 "아가씨는 읽었을까"는 능력이 작동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 번 거절했던 것을 허락하기로 한 선택이었다.

밑줄

문장 수집

내용은 줄줄 읊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읽어. (…) 줄곧 내 옆에 있으면서 나만,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나를…… 266쪽 · 오언
그런 방식으로 옆에 붙어 있는 걸, 존재한다고 일컬어도 될까. 상처를 읽는 행위로써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걸 가리켜 어떻게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267쪽 · 아가씨
난 이제 더는 당신하고 뭐든 개선할 여지도 의지도 없다는 것만 알겠어. 시키는 일은 할게. 난 어차피 그런 일을 위해 고용된 노비니까. 당신한텐 그거면 됐지? 267쪽 · 아가씨
읽지 마.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마. 330쪽 · 화자
그의 상처가 뭐라고 말해? 너는 그에게서 무엇을 읽었어?…… 331쪽 · 화자
마침내 용해되지 않는 감정들과 이가 빠지고 비어버린 다공질의 언어들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습니다. 335쪽 · 화자
상처 없는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 · 화자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마지막 장면 · 화자

소설이 답하지 않고 마주 세워둔 것

두 개의 결론

아가씨 —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이렇게 때리고 할퀴고, 상처를 주면 안 돼. 사과할 거지?
화자 — 속으로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오언을 겪은 두 사람이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화자는 아가씨가 아이에게 그 말을 하는 걸 다 보고서도, 여전히 자기 말을 전하러 다가간다. 소설은 누구 편도 들지 않고 두 사람을 마주 세워놓은 채 끝난다.

읽고 나서 남은 물음

논점

  1. 살아 있는 그가 상처를 내밀었을 때 아가씨는 물러났다. 그런데 죽어가는 그에게는 손을 얹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요구하는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서만 다가갈 수 있었다. 거래가 끝나야 애도가 시작된다.

    거절이 늦었다는 후회. 혹은 마침내 자기 의지로 고른 첫 번째 읽기.

  2. "상처를 읽는 행위로써만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걸 가리켜 어떻게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부를 수 없다. 그건 관계가 아니라 기능이다. 그래서 아가씨는 스스로를 노비라 불렀다.

    그렇다면 상처 없는 관계는 존재하나. 화자는 그걸 더는 모르겠다고 했다.

  3. 오언의 요구는 사랑인가 폭력인가. 둘 다일 수 있을까.

    폭력이다. 자기를 베어놓고 오라고 명령했고, 거절하면 더 많이 읽게 하겠다고 했다.

    그의 세계에서 배운 유일한 문법이 거래였다면, 그는 사랑을 그 문법으로 번역한 것뿐일까.

  4. 아가씨와 화자, 우리는 누구를 따라갈까.

    좋아해도 상처를 주면 안 된다 — 아가씨가 아이에게 가르치는 것.

    상처를 통해서만 닿는 상대가 있는지도 모른다 — 화자가 도달한 곳.

  5. 화자는 왜 아가씨를 찾아갈까. 저속한 호기심이라고 스스로 알면서도.

    답을 얻으러 간다. 그의 상처가 무엇을 말했는지 끝내 모르는 채 살 수 없어서.

    묻기 위해 간다. 자기 언어로, 아득한 거리를 걸어서. 오언이 끝내 하지 못한 방식으로.

  6. 말하기는 왜 이토록 어려운가.

    오언을 나무랐던 화자마저 병실 앞에서 이가 빠진 언어밖에 갖지 못했다.

    그러니 말 못 하는 사람은 오언 하나가 아니었다. 이 소설은 그를 예외로 그려놓고 마지막에 모두를 같은 자리에 세운다.

  7. 나는 베는 사람인가, 걷는 사람인가.

    베면 상대가 와야 한다. 오언은 그 방법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걸으면 내가 간다. 자격이 없어도, 아니 아무것도 아니기에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펼치는 칸

내 이야기

이 책이 내 안에서 건드린 것

슬펐어. 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걸까. 자신을 해치면서까지 읽히기를 원할 만큼 소통에 자신이 없었던 걸까.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오언과 아가씨처럼 좀처럼 소통이 되지 않기도 한다. 방법도 사고도 일치하는 것이 없어서, 말로 하는 소통이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읽힌다면, 나의 의도가 그대로 전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읽는다는 건 언제나 오독의 여지가 있는 걸.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밖에 소통하지 못하는 오언이 불쌍해서 슬펐다. 상처를 내어 진심을 전하려는 그 방식은 폭력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런데 동시에 — 상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내보이면서까지 상대를 모두 다 읽어야만 하는 걸까.

아가씨의 마음과 오언의 마음이 내 안에 모두 있다. 상처를 드러내며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게 너무 싫지만, 어떻게 해도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겠는 사람에게는 나를 베어서라도 다가가야 할까 싶은.

두고 볼 것

화자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다. 오언에게 남편을 잃고도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데까지 간 사람. 두 마음을 다 가진 사람만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언이 자기를 베어 내밀었을 때 상대가 한 일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손을 등 뒤로 감추고 물러나는 것이었다. 손이 온 건 모든 것이 끝난 다음이었다.